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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igh Plains - Pilot Hill (self-released, 2018)


Losci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겸 일렉트로닉 뮤지션 Scott Morgan과 미국의 첼로 연주자 Mark Bridges의 듀엣 프로젝트 하이 플레인즈의 신보. 이번 앨범은 Cinderland (2017)에 이은 작업이지만 전작을 위한 투어 배포용 테이프로 제작되었고 웹 릴리즈 형식으로 공개된 일종의 비공식 발매작이다. 사실상 전작의 부록 성격을 띠고 있지만 PH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는 청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다. 2015년 모건의 녹음에 브리지스가 참여하면서 처음 함께 작업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듀오를 위한 준비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음악은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음악이 지닌 여러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전자 효과음이 발산하는 앰비언스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현악기의 사운드를 배열함으로써 자신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과 정서를 현대 클래식의 언어를 차용해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필드 리코딩을 활용하여 묘사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한편, 비의적이면서도 심원한 표현에 현실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유사한 장르적 경향성을 지닌 다른 뮤지션들과의 차이는 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요소들에 어떤 위상을 부여하고 어떻게 서로의 연관성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소소하게는 사운드의 텍스처가 달라지고 궁극적으로는 진행 과정에서 제시되는 테마의 콘텍스트가 달라진다. 특히 PH와 같이 특정 대상에 대한 자신들의 정서와 감정의 묘사가 일련의 시퀀스를 형성하며 진행의 형식을 완성하는 음악에서는 개별 악기와 요소의 위상과 관계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적인 구성을 이어가며 내면의 정서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PH의 음악은 마치 모건과 브리지스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전자 악기와 첼로는 같은 문자열을 배열하며 서로를 보완하고 부연하는 회화적인 선형을 이어간다. 불확실한 감정의 표류를 서로의 연주에 기대어 구체화한 진지한 협업이다. 음악 자체가 과정 전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018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