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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rofound Observer - I Choose Not To (W.E.R.F., 2023)

 

벨기에 색소폰 연주자 Lennert Baerts가 이끄는 트리오 Profound Observer의 앨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레너트는 어린 시절부터 관악기를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키워온 것으로 전해진다. 10대 시절에는 축구선수를 꿈꾸며 유명 구단의 1군 선수로도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그 뜻을 접고, 음악원에 진학하며 현재에 이르게 된다. 레너트는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 젊은 신예임에도 Brussels Jazz Orchestra와 같은 유명 밴드를 포함해 Hermes Ensemble, Jakob Bro, Ambrose Akinmusire, Logan Richardson과 같은 거장들과 협업하며 연주자로서는 물론 작편곡과 프로듀싱에도 재능을 보이며, 평단은 물론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된다.

 

레너트의 연주는 고전 시대의 비밥에서부터 오늘날의 새로운 스타일을 아우르는, 전통적인 양식과 규범에 비교적 든든한 토대를 두고 있다. 감각적이면서도 뛰어난 기교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여기에 특유의 유연함이 더해지며 다양한 표현에 대응하는 능동성을 보여주고 있어, 연주자로서는 완성형에 가까운 재능을 선보인다. 레너트는 작곡가와 밴드 리더로서의 능력 또한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그는 현재 7인조 Clocks&Clouds를 비롯해 전통적인 쿼텟 형식의 Anti-Panopticon을 이끌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는 4인조의 Channeling the Flood (2020)와 Muze Jazz Orchestra의 타이틀로 Times Change and so Must We (2020)를 거의 동시에 발매하며, 각기 다른 음악적 양식에서 서로 다른 창의적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앨범을 녹음한 Profound Observer는 벨기에 기타/이펙트 Vitja Pauwels와 네덜란드 드럼 Daniël Jonkers로 이루어진 트리오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운드와 직관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음악적 개방성을 실험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이번 녹음에는 게스트로 트럼펫 Daniël Jonkers가 4개의 트랙에 참여해 PO 트리오의 새로운 음악적 도전에 걸맞은 개방적 창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앨범은 트리오가 지향하는 새로운 음악적 색과, 프로젝트의 개방적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 등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궁극에는 PO의 창의적인 음악적 독창성을 확인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각 악기의 사운드는 나름의 고유한 친밀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공간적 특징을 암시하는 듯한 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에어리 한 리버브의 기타와 드라이한 트럼펫의 조합과 같이, 악기마다 미묘하게 서로 다른 이질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한편, 이 또한 각 곡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세팅하여, 전체적으로는 각 사운드들이 부유하며 조우하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서로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한 이러한 연출은 관조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를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며, 청자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색과 표현을 더욱 선명하게 직관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전하기도 한다. 연주는 각 공간의 기능적 양식에 따라 자율적으로 작용하는 듯한 느슨한 연관을 보여주는데, 정교하게 합을 맞추려 하지도 않고, 때로는 의도적인 싱커페이션으로 미묘하게 엇갈리는 프레이즈를 펼치는 등, 마치 각자의 템포와 느낌을 통해 합의된 연주를 진행하는 듯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도 나름의 철저한 인과적 연관을 이어가며, 매우 정교한 화성학적 구조 위에서 집합적인 프레이즈를 완성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무척 여유롭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그 느낌이 풍요롭다기보다는 차라리 나른함에 더 가깝기도 하다. 때로는 공간 뒷 배경에 미묘하게 깔리는 노이즈 필드, 의도한 디스토션이나 거친 텍스쳐 등이 더해지며, 차분한 분위기에서도 나름의 거친 매력을 연출하고 있어, 은근한 퇴폐미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각자의 개성을 자율적인 방식으로 통합을 이룬 듯한 연주는, 절묘하게도 하나의 공통된 색감과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수렴하고 있어, 듣는 사람 또한 그 분위기에 서서히 스며들게 한다. 각자의 공간에 부여한 개성은 앙상블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며, 소규모의 포맷 속에서도 마치 대편성의 매스 임프로바이징을 추상한 듯한 풍부함을 느끼게 한다. 레너트의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음악적 확장성을 지닌 작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앨범이다.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