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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Ralph Alessi Quartet - It's Always Now (ECM, 2023)

 

뉴욕과 베른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미국 트럼펫 연주자 겸 작곡가 Ralph Alessi의 쿼텟 앨범.

 

1963년생인 랄프는 클래식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고, 10대 시절부터 클래식 연주자로 활약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뉴욕필의 트롬본 연주자 Joseph Alessi가 그의 친형이기도 하다. 이후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재즈 트럼펫과 베이스 연주로 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이후 오랜 협력을 지속하게 될 Ravi Coltrane을 만났다.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레비를 비롯해 Uri Caine, Steve Coleman, Drew Gress, Fred Hersch 등과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의 정규 멤버로 활약하게 되는데, 특히 유리의 작업에서는 랄프의 클래식적인 소양이 빛을 발하며 두 가지 장르의 경계에 대한 확장적 표현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아니스트 Michael Cain의 리드로 색소폰 연주자 Peter Epstein과 함께 녹음한 Circa (1997)를 통해 ECM과 처음 인연을 맺었지만, 본격적으로 레이블의 아티스트로 활약하게 된 것은 피아노 Jason Moran, 베이스 Drew Gress, 드럼 Nasheet Waits과의 쿼텟 연주를 담은 Baida (2013)를 통해서였다. 이후 피아노의 자리에 Gary Versace가 대신한 쿼텟 녹음 Quiver (2016)를 선보였고, 오랜 친구인 라비와 더블 프런트로 연주한 퀸텟 Imaginary Friends (2018)를 발표하는가 하면, 다른 녹음의 세션에 참여하는 등, 레이블의 주요 뮤지션 중 한 명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번 앨범은 오랜만에 선보인 쿼텟 연주를 담고 있다. 대신 피아노 Florian Weber, 베이스 Bänz Oester, 드럼 Gerry Hemingway 등, 기존과 다른 인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 출신이지만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뮤지션들로 구성한 이번 쿼텟은, 랄프의 Hochschule der Künste Bern JAZZ 교수진 합류 이후, 새로운 음악 환경을 반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 그 내용에서도 이전 쿼텟과 다른 미묘한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두 개의 공간이 교차를 이루며 기존의 익숙한 표현과 새로운 경험을 융합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랄프와 피아니스트 플로리안은 듀오 활동을 포함해 20년 가까이 다양한 음악적 조합을 통해 교류를 이어온 사이며, 랄프가 반츠 및 게리와 함께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베이스와 드럼 두 사람 역시 오랜 기간 서로 호흡을 맞추며 관계를 지속한 뮤지션들이다.

 

랄프의 연주가 전면에 있고 이와 직접 대면하는 피아노는 복합적인 화성의 구조를 통해 그 의미를 구체화하는, 마치 듀엣의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몇 개의 트랙은 이와 같은 형식을 통해 연주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쿼텟의 연주가 일련의 정형화된 형식적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형화된 역할과 기능에 대한 형식적 규범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유연한 공간 활용을 보여주면서도, 상호 간의 대위적 구성에 기반한 인과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는 즉흥과 작곡의 관계와 범위를 설정하는 데 있어 유연한 공간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합의에 근거한 각각의 자율성은 인터랙티브 한 능동성을 동시에 개방하기도 한다. 트럼펫의 리드는 그 이면의 자율적 개입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베이스와 드럼의 능동성은 곡의 해석과 균형에 직접 영향을 줄 만큼 미묘한 뉘앙스와 풍부한 다이내믹으로 공간을 채워간다. 특히 “His Hopes, His Fears, His Tears”와 같이 쿼텟 전체의 연주를 하나의 집합적인 프레이즈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상호 견인의 힘은, 각자의 공간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영향력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인상적인 합을 완성하기도 하며, “Diagonal Lady”에서는 상호 보완적인 긴밀함이 연출하는 내밀한 합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며 서로의 능동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면서도, 온전한 음악적 균형과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은 리더의 탁월한 능력이나 프로듀서의 재능도 큰 역할이 있었겠지만, 개별 뮤지션의 창의적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쿼텟의 연주는 마치 살아 있는 역동적인 생명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 같으며, 종종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놀라운 모습으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역동과 서정을 함께 품은 낭만적인 앨범이다.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