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Vyacheslav Gayvoronskiy, Andrei Kondakov & Vladimir Volkov – Russian Romances: Tribute to Dargomyzhsky (ArtBeat, 2013)


2000년대 초에 3개월 가량 러시아에 장기출장 간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시간이 허락된 하루 날 잡아 주소 하나 들고 그 때만 해도 유일했던 재즈 레이블 Boheme 사무실을 찾아갔다. 당시 기준 한 장당 3000원 정도 했던 CD들을, 미리 출력해간 레이블의 재즈 리스트 전체를 싹쓸이 해 담아 가져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허락되면, 겁도 없이 혼자 비행기 타고 뮤지션들이 자주 모인다는 상 페테스부르크까지 날아가 공연을 직접 보기도 했는데, 두 번 정도 운 좋게 그들의 사석에 합석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콘다코프와 볼코프도 그 때 만났던 적이 있다. 러시아에 무슨 재즈냐?라고 무식인증 스스로 할 사람 (설마?) 아직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만큼의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일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음악들이고, 당시로서는 (물론 지금 또한 마찬가지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매우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장년층에 접어든 이들의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또 그들이 젊은 시절 경험했던 구 소비에트 시절의 정치-문화적 지형을 기억해본다면, 이들 세대의 재즈 뮤지션들이 서로에 대해 보여준 음악적 유대감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또한 엘리트 교육을 받은 뮤지션들 답게 자신들의 음악이 정체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듯 하다.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된 이들의 음반들만 하더라도 당시에 이미 자신들의 음악적 색을 완성했다는 느낌을 주지만, 최근에 발표된 이들의 앨범들을 들어보면 예전과는 또 다른 음악적 사색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 앨범만 들어봐도 그러한 생각은 분명해진다. 옛 친구들 모여 추억팔이용 음반(앨범 제목이 그렇잖아 ㅎㅎ)을 대충 발매한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와는 정 반대로 이 앨범에 고유한 특징을 부여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았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오랜 시간 경험을 공유했던 노련함 또한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 정도 클래스의 음반이라면 분석이나 고찰 따위의 심각함을 접어두고, 그냥 음악에 귀를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준다 (그렇다고 우리 연아의 매달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201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