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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é Kellerberg & Jakob Schauer - Chimera (Blue Spiral, 2022)

komeda 2022. 12. 8. 23:52

 

체코 피아니스트 겸 사운드 아티스트 André Kellerberg와 오스트리아 프로듀서 겸 전자음악가 Jakob Schauer의 협업 앨범.

 

얼핏 보더라도 공통의 음악적 특징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두 뮤지션의 공동 작업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실제로 안드레는 지금까지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경향적 특징을 수용하며 전자 음향을 활용한 사운드 필드를 선보였고, 자콥은 노이즈나 글리치 같은 실험적인 표현을 활용하거나 일렉트로어쿠스틱의 특징을 부각하며 새로운 음향 공간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이들에게 일렉트로닉이라는 나름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접점보다 차이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앨범은 각자의 음악적 특징을 폭넓게 반영하면서도, 제한된 접점 안에서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완성하는 인상적인 성과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협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간에 대한 독특한 사고를 음악으로 담아냈던 자콥의 캐릭터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평소 그가 들려줬던 음악은 전통적인 음계나 조성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접근을 보이면서, 동시에 사운드 그 자체가 지닌 밀도나 부피 등을 부각하는데, 이는 복합적인 레이어의 중첩을 통해 독특한 기하학적 구성을 지닌 음향 공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여러 사운드의 층위들이 일련의 다양한 상호 작용을 통해 마치 하나의 유기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추적하는 듯한 형상은, 이번 작업에서도 안드레의 새로운 사운드 레이어를 더하며 구체성이 드러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협업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키메라’라는 타이틀이라는 생각이다. 이질적인 특징들로 구성된 신화적 가상이면서도, 서로 다른 세포나 유전자의 융합을 통해 탄생한 단일 유기물을 지칭하기도 하는 이 개념은, 어쩌면 최소한의 접점으로 완성한 음악적 합의를 정의하는데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전설 속 키메라가 각기 다른 종족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듯이, 이 둘의 협업 역시 각자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여, 앨범의 타이틀은 나름의 적절성을 지닌다는 인상이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둘이 만들어내는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공간감이다. 점도 높은 점액질의 먹먹한 분위기를 그려내는가 하면, 투명하고 날이 선 듯한 차가운 배경을 연출하는 등 공간을 통해 각 곡의 뉘앙스를 완성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준다. 시간상으로는 개별 소리의 퇴적을 통해 만들어진 독특한 음향의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듣다 보면 마치 그 공간에서 사운드가 부유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듯한 느낌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공간 안에서 두 뮤지션이 각자 개입하는 방식 또한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자콥은 비교적 익숙한 일렉트로닉 혹은 신서사이저의 고전적인 템플릿에 기반을 두면서도 이를 낯선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독특한 인상을 완성하는데, 때로는 펄스나 지터와 같은 다양한 노이즈를 이용해 공간의 가상성을 묘사하는가 하면, 일렉트로닉의 음악적 활용과 더불어 사운드 그 자체의 연출 효과를 적극 도입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도 협업이라는 작업의 특성을 염두에 두기라도 하듯, 미니멀한 피아노 연주가 지닌 공간적 배경을 묘사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기본적으로는 피아노로 대표되는 어쿠스틱 계열의 사운드와 전자 음향의 미묘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마치 두 공간이 우연한 조우를 이루는 듯한, 어떻게 보면 서로에 대해 최소한의 유기적 관련성만을 전제로 하는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관조적인 시선으로 연관을 이어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두 가지 양식의 사운드는 단순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때로는 분열적이고 불안정한 결정체처럼 활용되기도 하는데, 피아노의 서스테인이 날카롭게 파열하거나 리버브에 의해 산란하는 것과 같은 효과 외에도, 그 사운드 또한 균일함 대신 공간적 특징에 따라 각기 다른 성격으로 튜닝하여 들려주기도 한다.

 

서로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듯하지만, 어쩌면 이 지점에서 이들이 함께 완성하는 다양한 공간적 표현이 지닌 독특한 정서적 매력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밀도와 부피로 드러나면서도, 개별 사운드의 관조적인 유기성이 만들어내는 우울하고 고립적인 공간감은 이번 공동 작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임이 분명하다.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