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o Fresa - Reliving at Pompeii (EM Jazz, 2022)
이탈리아 음악가 겸 작곡가 Antonio Fresa의 OST 앨범.
앨범은 Luca Mazzier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Pink Floyd: Reliving at Pompeii (2022)에 수록된 스코어를 담고 있으며, 해당 영화는 Adrian Maben 감독 연출한 Pink Floyd: Live at Pompeii (1972)의 촬영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다. 1972년도 영상은 폼페이 원형 극장 중앙에서 청중 없이 이루어진 핑크 플로이드의 촬영 콘서트를 중심으로, 역사적 유적지와 오랜 기간 투어 장비로 촬영한 밴드의 다양한 장면을 교차 편집하고 있어,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영상을 위한 연주와 당시 그룹의 대표곡을 비롯해,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의 작업 모습도 일부 포함하고 있어, 핑크 플로이드는 물론 음악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다뤄지며, 해당 양식의 공연과 영상은 이후 많은 음악가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촬영 30주년이 되던 2002년에는 당시의 폼페이 모습을 다시 촬영하고 편집한 아드리안의 DVD 감독판 등 지금까지 몇 개의 판본이 존재하는데, 이번 영화의 경우 50년 전에 있었던 해당 촬영 그 자체와 의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지니며, 아드리안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음악을 담당한 안토니오는 피아노를 공부했고 이후 영화 음악을 전공했으며 2000년대부터 에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영상 작품에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을 진행하는 것과 더불어, 피아노 솔로에서부터 오케스트라 작업은 물론, 클래식에서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특별한 경향적 특징을 반영한다기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익숙함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표현이 인상적인데, 영화의 이야기 전개 속에서도 각각의 순간에 따른 다양한 묘사적 표출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일상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름의 충실한 규범성이 미덕이기도 하다. 영화 작업에만 국한하여 안토니오니의 음악을 이야기한다면, 나름 내러티브의 흐름과 각 씬의 묘사적 표현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화는 1972년도 작품을 감독한 아드리안의 작업과 그 현재적 의미를 조명하면서도, 핑크 플로이드를 직접 다루고 있기 때문에, 스코어의 전체적인 사운드는 당시의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작법에 비교적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타, 피아노, 키보드, 베이스, 드럼 등 다분히 레트로 한 사운드 세트를 이루고 있으며, 그 조합 역시 밴드적 구성을 기반으로 연주를 완성하고 있다. 테마는 물론 코드 진행이나 플로우에 있어 고전적인 특색을 부각하고 있어, 음악 그 자체만으로 보면 다분히 복고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감성은 핑크 플로이드를 직접 겨냥한 핀포인트에 해당하면서도, 안토니오는 나름의 작법을 기반으로 현악이나 관악은 물론 전자 음향의 효과 등을 포함하는 연주를 완성하게 된다.
핑크 플로이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사운드에 몇 가지 복합적인 기악적 표현을 더한 듯한 음향의 조합은, 마치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50년의 시간을 연관 짓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와 아드리안의 관계를 묘사하는 음악적 작법처럼 드러나기도 하는데, 특히 이탈리안 특유의 낭만적 서사를 그려내고 있는 호른의 사운드와 라인은 다분히 은유적이면서도 때로는 직설적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상징성을 지닌 사운드의 큐레이팅과 그 조합을 통해, 안토니오는 각각의 상황에 걸맞은 적절한 곡을 제공하고 있어, 개별 트랙만 듣더라도 해당 음악이 묘사하고 있는 상황의 구체성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나름의 명료한 묘사와 표현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으로 연관된 두 개의 시간을 다루고 있어, 전체 음악은 현대적인 양식으로 재구성한 고전적인 사운드의 조합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대신 개별 음향의 굵은 음색과 깊은 리버브로 밀도를 채워가며, 그 간극을 안정적으로 좁혀내고 있다. 이를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것이 “Maben Theme”로, 핑크 플로이드 특유의 코드 진행과 관악 솔로 라인을 조합하여, 이번 영화의 의미를 아름답게 함축하는 듯하다.
신촌의 한 카페에서, 여러 번 복재를 거듭해 조악하기 그지없는 화질의 Live at Pompeii를 시청하고, 친구들과 그 감동을 되새기며 영화보다 더 긴 시간 이야기 나누었던, 모든 순간 엄혹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소한 일탈이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 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어린 추억보다 더 오랜, 50년을 버텨온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모든 예술가에게 감사를…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