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Noir - See You On the Other Side (Enja, 2022)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Ark Noir의 앨범. 2010년대 말 결성된 AN은 색소폰/클라리넷 Moritz Stahl, 키보드/신서사이저 Sam Hylton, 기타 Tilman Brandl, 베이스 Robin Jermer, 드럼 Marco Dufner 등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재즈 씬에서 활동 중인 마르코나 모리츠와 같은 뮤지션을 포함하고 있어 고전적인 재즈 퀸텟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그 범위를 넘어선 복합적인 양식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의 데뷔작인 Tunnel Visions (2019)만 하더라도 일렉트로닉에 의해 파생된 다양한 사운드와 비트를 활용해 기존의 퓨전이나 재즈-록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의 실험적인 접근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마치 기존의 재즈에서 통용되는 언어에 기반에서 벗어나려 하는 듯한, 새로운 대안적인 표현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렉트로닉의 효과와 이를 통해 연출하는 공간에서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확장하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기존 재즈의 어프로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오히려 그 계기를 통해 촉발되는 능동적 상호 개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각각의 악기가 연출하는 독특한 이펙트는 공간의 신비감을 더하며 AN 특유의 몽환적인 에소테릭을 완성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핵심은 집합적으로 총체를 이루며 볼드 한 밀도로 완성되는 밴드의 사운드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3년 만에 선보인 이번 앨범에서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깊은 밀도감은 물론 이를 화려하면서도 신비롭게 채색하는 상징적인 사운드의 활용을 선보이고 있어, 전작보다 진화한 음악적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AN은 감염병 사태, 기후 위기, 사회 분열 등 최근 우리 주변의 광기에 대한 자기 성찰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어, 다분히 아포칼립스 적으로 느껴지는 앨범 전체의 분위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리스 신화를 통한 회고적인 교훈을 도입하기도 하고, 새로운 우주의 발견에서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성찰을 제안하는가 하면, 고 Robin Williams에 대한 헌정을 담기라도 하듯 Dead Poets Society (1989)의 대사를 소환하기도 하여, 이번 작업이 단순한 암울함에서 머물지 않고 AN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와 희망을 제안하는 태도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이 강한 밀도로 응집되는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행이지만, 개별 공간에서 솔로 연주가 완성하는 프레이즈의 선명성을 강하게 부각하고, 그 표현에서 복합적인 다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곡의 진행에서 작곡의 의도가 반영된 구성의 힘이 크게 작용하면서도,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개방적인 공간 활용은 음악에 텐션을 부여하며 그 분위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집단화된 총체성 안에서도 개별적인 역동을 활성화하고 있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안에서도 다양한 텍스쳐와 다이내믹을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하면서도 강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다.
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