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People - Black Crab (Maisie, 2022)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웨덴 장편 Black Crab (2022)의 OST. 내전으로 인해 폐허가 된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Jerker Virdborg의 동명 소설 Svart Krabba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 Adam Berg가 연출을 담당했다. 문명화된 서구 사회에서는 동맹에 준하는 지역 안보체제와 첨단화된 강력한 무기 시스템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며 전쟁 억지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과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힘의 약한 고리에서는 여전히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현존한다는 것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다. 이 영화는 현재의 비극적 사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서양 문명 도시가 내전으로 파괴되고 인간의 일상이 야만적으로 황폐해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내전의 배경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제공하지 않으며, 심지어 주인공이 속한 편이 어떤 명문을 위해 상대와 싸우는지에 대한 부연도 생략한다. 다만 주인공이 딸과 헤어진 지 5년이 지났다는 점을, 이별을 앞둔 차 안에서 흐르던 David Bowie의 “Five Years”를 두고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을 주고받았던 장면을 통해 유추할 수 있고, 딸의 생사 여부 또한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Dead People의 “Stay Dead”라는 곡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아쉽게도 주인공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관련된 이 두 곡은 이번 OST에는 수록되지 않았고 “Stay Dead”의 경우 OST와 같은 날 별도의 싱글로 공개되었다. 대신 이번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막상 스코어를 담당한 DP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비교적 최근 선보인 몇 편의 싱글과 리믹스 작업 외에는 기존 발표곡들이 없고, 이번 스코어 공개에 맞춰 관련된 개별 곡이 발매된 점으로 미루어, 별도의 팀으로 이루어진 집단 작업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스코어의 언어와 문법이 치밀하고, 영화적 내러티브와 개별 신에 완벽한 일체감을 이루며 구성된 곡의 특성으로 미루어 해당 분야에 상당한 전문성이나 경력을 지닌 개인이나 집단임은 분명하다. 일렉트로닉과 신스웨이브의 특성을 결합해 영화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성해 상황에 대한 총체성을 부연하고, 개별 사운드 하나하나에 고유한 텍스쳐를 부여함으로써 해당 장면의 긴장과 상황을 청각적으로 묘사하는 등, DP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적극적인 개입은 극적 몰입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와는 별도로 음악 그 자체만 감상하더라도 짧은 음악적인 진행과 흐름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여러 특성을 지녀 다양하면서도 섬세하게 이루어진 사운드 큐레이팅을 바탕으로 명료하게 구성되는 다양한 편곡 양식 등은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 역할이 더 크게 빛나는 것은 분명하다.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