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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y Grinko - Orange Marmalade (self-released, 2021)

komeda 2021. 11. 16. 12:45

러시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Evgeny Grinko의 앨범. 젊은 시절 사이키델릭과 실험적인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의 아방가르드 록 그룹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는 에브게니는 밴드 공연이 쉬는 기간에 피아노를 위한 소품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의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작업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유형의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전원생활을 선택했고 여러 편의 영화 음악과 개인 작업을 꾸준히 선보인다. 에브게니의 음악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바비첼 등의 소규모 현악이나 솔로 악기를 배치해 앙상블을 이루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일상적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풍부한 감수성을 반영한 작곡과 편하게 다가서도록 배려한 연출을 통해 나름의 차별점을 두기도 한다. 이번 작업은 미니 앨범 Naive Album (2019) 발매 직후인 2020년 늦은 겨울에 녹음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전작과는 미묘하게 다른 온도차가 느껴진다. 전작의 경우 연주용 그랜드를 다분히 차가운 톤으로 조율한 피아노 사운드가 투명한 분위기의 연주를 들려줬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펠트 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독특한 톤의 음색이 인상적인 온화한 온도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분위기의 피아노는 Nils Frahm의 Una Corda를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로 에브게니의 이번 녹음은 닐스의 동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낮게 깔리는 듯한 차분함과 안정감이 앨범 전체의 고유한 분위기와 이미지를 형상화하게 되며, 그가 담아내고자 했던 목가적 삶과도 훌륭한 일체감을 이루게 된다. 이는 "It's Foggy Today", "On The Waves", "Grass, Dew And Marmalade", "Petrel Bird" 등과 같은 제목으로 묘사된 일상의 풍경은 물론, "Things From The Past", "See You Tomorrow", "Tomorrow"와 같은 생활의 감성을 표현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사운드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현악기나 아코디언 솔로 연주 또한 이와 같은 일상적 톤에 맞춰진 조율을 보여 전체적인 균형이나 조화는 물론, 사색적인 여운을 남기는 듯한 리버브 또한 정서적 잔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하다. 다만 이와 같은 사운드와 톤의 균형이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다른 뮤지션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에브게니가 감당하거나 넘어서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물론 그만의 유니크 함을 담아낼 수 있는 정서적 배경과 음악적 콘텐츠가 있으니 이 또한 크게 문제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색과 여유가 담긴 정감 있는 앨범임은 분명하다.

 

202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