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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g 8 - Enroute (Live At Robert Johnson, 2022)

komeda 2022. 5. 4. 19:49

Flug 8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독일 전자음악가 Daniel Herrmann의 앨범. 어린 시절 다니엘은 오르간 제작자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록 밴드의 곡을 연주하며 성장할 수 있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신서사이저를 손에 넣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미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프로젝트 과제를 위해 사용한 이름인 Flug 8이 탄생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열심히 들렸던 프랑크푸르트의 유명 테크노 클럽이자 음반사인 Live At Robert Johnson의 아트 디렉터가 되었고, 이곳에서 다니엘은 사진 촬영이 허락된 작가로 활동한 것으로 이야기한다. 현재도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며, 이번 앨범의 커버 아트 역시 자신의 스튜디오가 위치한 도심 외곽 외딴 숲의 일부라고 한다. 2000년대 말 음악가로 데뷔 이후 지금까지 여러 레이블에서 다섯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다니엘이 이번 작업을 LARJ에서 선보인 것은, 약물과 불면 그리고 노숙으로 이어진 젊은 시절을 예술적 창의로 이끌었던 출발점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에서 나름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다니엘은 클라우트 록, 앰비언트, 미니멀 테크노 등의 요소를, 각각의 앨범마다 고유한 콘셉트에 적합한 균형점에서 통합해 적용하고 융합하는 방식을 선보였는데, 이는 개별 작업이 지닌 특징을 부각하는 동시에 자신의 음악이 지닌 고유한 정체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현명한 접근이 아닐까 싶다. 이번 앨범은 프랑크푸르트 외곽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작업을 담고 있는데, 벽난로가 위치한 아늑한 거실에 다양한 악기들이 진열된 곳에서 봉쇄 기간의 일상을 음악으로 담아낸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다니엘은 이를 “차가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따듯함"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이는 이번 앨범의 주요한 콘셉트를 이루기도 한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기존 작업에 비해 앰비언트적인 성격이 강조되고 있으며, 신서사이저에 의해 연출된 사운드 또한 이와 같은 분위기에 적합한 큐레이팅을 보여주고 있다. 대신 그 구체적인 접근은 무척 명료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가움과 따듯함의 공존을 묘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복합적인 요소의 중첩을 시도하지 않으며, 악기 역시 일부 트랙과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듈러 신서사이저가 지닌 고유의 톤의 활용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폴리포닉한 조합 대신 필터나 노브의 조작을 통해 소스 음원이 변질 혹은 변화할 수 있는 제한된 폭 내에서의 미묘함에 주목하고 있고, 사운드의 배열 역시 정교함보다는 그곳에 소리가 자연스럽게 위치하는 듯한 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운드 사이에 인위적인 인과성을 강조한다기보다는 개별적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 같은 느낌이며, 메인 라인과 그 주변의 플로우 또한 우연한 조우를 통해 서로 연관을 맺는 듯한 모습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다니엘의 외로움에 온전히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그 ‘도중에' 우연히 마주한 순간과도 같은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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