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ncarlo Erra - Departure Tapes (Kscope, 2021)
영국에서 활동 중인 이탈리아 작곡가 겸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 Giancarlo Erra의 앨범. 지금까지 알려진 Nosound라는 활동명 대신 본인의 실명 등판 이후 발표한 두 번째 작품. 이번 앨범은 기존 자신의 음악과 현재의 지향 사이에 어떠한 차이와 공백이 존재하는지를 조금은 분명히 드러내는 듯하다. 전작 Ends (2019)에서는 기존에 선보였던 감각적 취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선에서 새로운 음악적 모색을 보여줬다면 이번 앨범은 이전에는 흔히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를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앨범의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떠남' 혹은 '출발'이라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단어에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을 반영하기도 하고, 생활 터전과 고향을 오가며 기록된 녹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지안카를로 자신의 당시 상황이 음악에 투영되었던 탓에 이번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우면서도 명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앨범은 어느 때보다 소박한 공간 구성을 이루면서도 그 안에는 공허한 느낌의 펠트 한 사운드들이 주를 이룬다. 프로그래밍이 된 VST 사운드를 이용한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언어를 전면에 두고 있고, 그 텍스쳐 또한 다분히 거칠면서도 라우 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미니멀 한 테마를 반복하며 그 위에 레이어를 덧입히거나 소멸시키며 점진적인 빌드-업을 이루는 단순한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명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개방하는 듯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처럼 명료하고 소박한 진행을 강조한 분위기 속에서도 17분에 이르는 "Departure Tape"의 경우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곡은 마치 의식과 정서의 절충적 흐름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스토리 텔링과도 같은 일련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물론 이 안에서도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빌드-업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특별한 형식적 구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한 자유로운 진행을 보여준다. 여러 개의 테마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어, 이는 마치 자유로운 의식과 정서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으로 비친다. 앨범은 이미 익숙한 여러 표현들에 의존하고 있지만 개인적 진솔함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 하겠다.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