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y - Bordeland (Ronin Rhythm, 2018)
스위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Lucca Fries와 드러머 Jonas Ruther로 이루어진 재즈 듀오 헬리의 신보. 2011년 결성되어 지금까지 Rapture (2015)와 Jangal (2016) 등의 앨범을 발표했고, 이번이 이들의 세 번째 녹음이다. 흔히들 피아노-드럼 구성의 듀엣에서 연상할 수 있는 재즈의 내용은 임프로바이징에 한정되지만, 이들은 개별적 표현보다는 집합적 합의가 이루는 음악적 내밀함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엄밀한 실내악적 규범을 이용해 둘 사이의 인터액티브와 다이내믹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데뷔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앨범에서는 더욱 극적인 모습으로 음악적 응집력을 끌어내고 있다. 이를 위해 미니멀리즘의 근원적 질문을 연상시키는 테마들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에 내재하는 기존의 다면적인 모습들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드럼이 합을 이루어 원시 리듬의 주술적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실내악의 합주를 연상시키는 클래식의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메탈 같은 강렬함을, 때로는 몽환적인 앰비언트를 끌어내는 등, 형식적으로는 매우 단순한 듀엣이라는 포맷이지만 이 안에서 구성할 수 있는 다양한 긴장과 조화의 가능성을 모두 개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기존 앨범들에서는 이와 같은 자신들의 다면적인 모습들을 형식의 조율을 통해 끌어냈다면, 이번 녹음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형상들을 둘 사이의 관계 속에 내면화함으로써 보다 일체감 있는 음악적 밀도를 완성하고 있다. 두 뮤지션 관계의 내밀함은 리듬과 멜로디의 형식적 경계를 스스로 지워버리고, 마치 두 개의 다른 붓으로 하나의 캔버스에 정밀묘사를 이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실제로 이들의 음악은 매우 강한 묘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두 개의 사운드가 중첩되어 하나의 공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무척 강렬하다. 어떠한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완성된 뛰어난 건축적 디자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숨 막히지만 아름답다.
2018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