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ny Greenwood - Spencer (Mercury KX, 2021)
Radiohead 출신 영국 뮤지션 Jonny Greenwood의 OST 앨범. 이번 OST는 최근 북미에서 개봉한 칠레 Pablo Larraín 감독의 장편 Spencer (2021)의 스코어를 수록하고 있다. 은밀한 왕가의 사생활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최대의 가십으로 손꼽히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스캔들은 결별과 불행한 사고 이후에도 끝없는 세간의 관심을 이어오고 있다. 작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Crown Season 4 (2020)에서는 해당 사건을 직접 다루면서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문제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비극을 가공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즐길 거리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북미 개봉 이후 이번 영화와 관련된 평가에서도 이러한 비판은 우회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다이애나 역을 맡은 Kristen Stewart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평이 자자한데, 개인적으로는 영화 관람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OST가 담고 있는 음악 자체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받을 만하다. 음악은 클래식의 바로크 양식과 현대의 프리 재즈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케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조니의 영화 음악 작업과도 상당한 차이를 두고 있다. 대비되는 두 가지 장르적 양식을 음악 구성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마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왕실과 미디어의 영역에서 스캔들로 세속화된 대중적 관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두 가지가 서로 보완적일 수도 없고 적절한 조화나 균형점을 찾기 힘든 현실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음악은 두 개의 다른 장르적 영역이 극명한 대비와 대칭을 이루는 모습을 보이며, 이 둘은 어느 하나의 양식으로 통합되거나 수용되지 않는 진행을 이어간다. 이와 같은 대비와 대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영화 속 극 중 전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장르의 대비적 배열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지언정 매우 자연스러운 음악적 진행과 전개를 완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적인 양식으로 도입과 결말을 구성하는 중간 전개 과정에서는 재즈의 자유로운 프레이즈가 배치되어 마치 세상과 단절을 이룬 듯한 왕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때로는 전통 악기들로만 이루어진 복합적인 화성의 텐션으로 은밀한 궁전 내부의 상황을 표현하는 듯하다. 조니는 하프시코드, 트럼펫 등과 같이 대표적인 악기에 강한 상징성을 부여해 그 사운드가 등장하는 순간에 모든 흐름을 지배하는 힘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 자체는 큰 관심이 없지만 극 중에서 조니의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성과임은 분명하다.
202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