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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sper Bjørke Quartet - Mother (Kompakt, 2022)

komeda 2022. 11. 2. 22:58

 

덴마크 프로듀서 겸 음악가 Kasper Bjørke의 Quartet 프로젝트 앨범.

 

카스퍼는 1990년대 말, Tomas Barfod와 함께 디스코 하우스 듀오 Filur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데, 여러 유명 보컬들과의 작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큰 대중적인 호평을 받기도 했다. 듀오 프로듀싱 활동은 2010년대 초에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지만, 카스퍼는 이미 솔로 DJ와 리믹스 등을 병행하며 하우스와 테크노 계열에서 나름의 중요한 입지를 구축하기도 했고, 레이브 록, 클라우트, 일렉트로닉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개인 작업을 선보이며 장르 내에서의 음악적 지반을 폭넓게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자신의 유니크 한 공간적 특성 속에 기악적인 배열을 활용한 일련의 접근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존 자신의 음악적 언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름의 스펙트럼과 일관성을 동시에 엿보게 된다.

 

카스퍼는 이후 암 투병 끝에 신서사이저 Claus Norreen, 바이올린/비올라/첼로 Davide Rossi, 피아노 Jakob Littauer 등으로 이루어진 Kasper Bjørke Quartet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게 된다. KBQ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뮤지션들의 조합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카스퍼가 지금까지 선보였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새로운 접근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끌게 된다. KBQ의 첫 앨범인 The Fifty Eleven Project (2018)는 모던 클래시컬의 시점에서, 인간의 풍부한 감정의 다면성을 다루는 듯한 11개의 장편들로 이루어졌는데, 2시간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음악적 내러티브를 통해 카스퍼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집단적 창의를 훌륭하게 보여주게 된다. 5년간의 투병과 관련된 사적 감정을 현대 작곡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한 11개의 곡은 모두 단편 영화 형식의 영상으로 제작하여, 미적인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큰 호평을 받기도 한다.

 

4년 만에 선보인 이번 앨범은 기존 쿼텟의 작법을 기반으로 형식적 확장과 외연의 확대를 모색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KBQ의 멤버들 외에도 Sofie Birch는 일부 트랙에서 부가적인 신서사이저의 레이어를 더하고 있으며, Josephine Philip과 Hannah Schneider로 이루어진 퍼포먼스 듀오 Philip | Schneide는 매혹적인 보이스 공간을 연출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PACE Percussion Trio의 멤버인 Mathias Friis-Hansen와 David Hildebrandt는 마림바 연주를 통해 감각적인 시퀀싱의 플로우에 몽환적인 텍스쳐를 완성하기도 한다. 전작이 암 투병과 관련한 카스퍼의 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 시각을 더욱 확대하여 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회복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어, 감정의 서사를 확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앨범은 기존 KBQ의 공간을 게스트 뮤시션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각 곡의 표제에 알맞은 음악적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앨범은 하나의 통일적인 톤이나 텍스쳐를 기반으로 하는 지속성 대신, 각 게스트의 공간을 개방하며 표출되는 다양성을 담고 있으며, 이와 같은 각 트랙의 개별성은 KBQ의 음악적 표현을 암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레트로 한 질감의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와 고전적인 리버브와 이펙트를 현악과 건반의 어쿠스틱 텍스쳐와 조합한 KBQ의 기본적인 사운드는 게스트 뮤지션의 공간적 부피와 역할에 따라 새롭게 재구성되며, 앨범은 자연스럽게 보다 다양한 음악적 형상을 다루게 되는데, 모던 클래시컬 양식의 다면성에서부터 진지한 일렉트로닉의 내밀함을 포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는 앙상블의 집약적 응집을 보여주는 강한 밀도를 완성하는데, 미니멀한 라인의 레이어링과 그 변주 및 배열의 변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정교한 플로우는, 11분에서 20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몰입과 이미지너리 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매력을 지닌다.

 

쿼텟에 게스트가 참여하는 단출한 편성이지만, 사운드의 정교한 응집과 치밀한 공간 연출을 통해 완성한 이미지는 마치 큰 규모의 앙상블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길고 점진적인 플로우지만, 강한 음악적 생동감을 내포하고 있어 마치 살아 숨 쉬는 숭고한 생명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듯하다. 다양한 음악적 형상을 다루고 있지만, 명료한 정서적 앰비언스가 이끄는 강한 응집은, 앨범이 담고자 했던 우리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염원을 진지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사고와 반성을 위한 음악이며, 동시에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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