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alie Beridze - Of Which One Knows (Room40, 2022)
조지아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Natalie Beridze의 미발표곡 모음 앨범.
나탈리는 1979년생으로 정치학과 미디어를 전공한 것으로 전해지며, 학생 시절 지역의 예술 창작 집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영상 관련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자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고 2000년대 초 Max Ernst를 통한 음반 발매를 계기로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주로 독일을 배경으로 TBA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대 이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Monika Enterprise 레이블에 기고하며 꾸준히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감각적이면서도 때로는 대중적 취향을 반영한 일렉트로닉 계열의 작업을 선보였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여전히 전자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현대 작곡이나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징들과도 미묘한 연관을 보이는 독특한 분위기로 서서히 진화하게 된다.
이번 앨범은 2007년에서 2021년 사이에 작곡된 나탈리의 곡들 중, 정규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트랙들을 포함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TBA의 타이틀로 발매한 Size And Tears Alice In Wonderland (2007)에서부터 최근의 Mapping Debris (2021)에 이르는 6편의 정규 음반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번 앨범에는 모두 9개의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이번 앨범을 통해 오랜 기간 변화해온 나탈리의 음악적 궤적을 추측해볼 수도 있겠지만, 배열 순서는 작업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 듯 보이며, 때로는 기존의 음악적 분위기와는 색다른 접근도 포함하고 있어, 연대기적인 회고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하다. 대신 그녀가 14년 동안 축적해온 음악적 궤적을 총체적으로 관찰하게 함으로써, 나탈리의 음악적 현재성을 규정하는 복합적인 요소들을 개괄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는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앨범은 다양한 시기와 작업을 포괄하는 만큼 다양한 방식의 기악적 구성과 형식을 포함하고 있다. 보코더로 굴절된 보이스의 읊조리는 듯한 가사 전달에서부터, 현대음악의 특징을 반영한 실내악의 실험적인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나탈라의 의식 속에서 탄생한 다양한 음악적 표현은 어느 하나의 음악적 규범이나 형식으로 포괄되지 않는 복합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개별 음악이 보여주는 특징 또한 각각의 고유함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녀의 음악이 일렉트로닉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활용이나 접근에서의 구체성은 매번 각기 다른 양식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운드의 구성이 복잡하든, 단순하고 명료한 소스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음악이든, 나탈리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집약된 공간에서의 밀도감은 특히 인상적이며, 이는 다양한 양식에도 불구하고 균일한 몰입을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성은 음악적 유연함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녀의 정규 작업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은 쉽게 포착되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앨범 전체에 고유한 정서적 배경을 유지한다는 점인데, 이는 의도한 큐레이팅의 효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탈리의 고유한 음악적 바탕을 이루는 근간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탈리는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여러 소품들을 떠올리며, 서로 다른 용도의 물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흔적과 이로부터 유발되는 공감각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이번 앨범이 공유하는 정서적 분위기의 일체감에 대한 유의미한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음악적 접근에서의 유연함은 다양한 접근을 개방하며 풍부한 창의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이를 구성하는 방식에서의 엄밀함은 나탈리의 깊은 사색을 반영하는 듯하다. 때로는 심오하면서도 때로는 시적인, 나탈리의 매력을 충분히 집약한 앨범이다.
2022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