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l Heppleston - Plankton and the Whale Shark (Hopton, 2022)
영국 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 Neal Heppleston의 앨범.
닐은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밴드에서 베이스 연주자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는데, 2010년도에 들어서면서 유명 현악기 장인들로부터 전수받아 현재에는 자신의 작업실을 운영하는 악기 제작자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음악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몇몇 세션 및 그룹 활동 외에는 특별한 개인적 활동은 없었는데, 비교적 최근 자신의 개인 음악 작업을 공개하며 음악가로서도 본격적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닐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매한 첫 작품인 Folk Songs For Double Bass (2019)는 다양한 악기로 이루어진 기악적 편성을 중심으로 현대 장르의 다면적 특징 속에 전통적인 민속적 테마를 재구성한 독특한 작업으로 기억할 수 있다. 다양한 편성의 조합을 통해 민속적 테마를 재해석하고, 그 안에서 폭넓은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연주 중심의 규범적 특징을 보여주면서, 전체적으로는 통상적인 어법으로 회귀하는 듯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포크와 악기의 관계를 앨범의 핵심 모티브로 삼았던 점을 생각한다면, 그 안에는 다양한 분화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전작에서 조심스럽게 드러났던 다면성을 전면에 부각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전작이 민속과 관련한 장르적 범주에서 다뤄진다면, 이번 앨범은 그와는 전혀 다른 다양한 특성들을 폭넓게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 닐은 개별 곡의 성격에 맞춰 더블 베이스 외에도 베이스 기타, 어쿠스틱 기타, 멜로트론, 키보드 등을 번갈아 연주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 분야에서 다수의 중량감 있는 뮤지션들이 함께 녹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루트/전자기타 Robert George Saull, 드럼/퍼커션 Guy Whittaker, 바이올린 DBH 및 Amelia Baker, 비올라 Aby Vulliamy, 첼로 Aaron Martin, 하프 Graham McElearney, 색소폰 James Mainwaring, 랩 스틸 기타 Nick Jonah Davis, 하모니움 Jim Ghedi, 피아노 Thomas Méreur, 대나무 플루트 Sharron Kraus, 신서사이저 David Broadhurst, 클라리넷 Hayden Berry 등, 민속이나 월드 계열 외에도 현대 클래식, 일렉트로닉, 재즈 등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의 뮤지션들이, 각 곡의 특징에 맞게 3인조에서 5인조에 이르는 편성과 조합을 통해 연주를 완성하고 있다.
여러 뮤지션이 참여하고 있지만, 편성은 다섯 명을 넘지 않는 대신, 다양한 기악적 조합을 통해 풍부한 장르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앰비언트, 재즈, 모던 클래시컬, 사이키델릭 록, 아방가르드 등과 같이 큰 범주로 엮을 수 있는 상징적인 곡들을 포함하면서도, 각각의 트랙은 자신만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는 나름의 개별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앰비언트로 분류할 수 있는 곡들이라도, 루프와 같은 베이스 워킹과 현악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중첩해 점진적 순환을 이어가며 빌드-업을 완성하는가 하면, 드론을 기반으로 하는 전형적인 앰비언트의 무브먼트에 하프의 기악적 라인을 배열하여 차츰 다크 앰비언트적인 축적을 완성하는 등, 서로 다른 접근을 지니고 있다. 로우-파이의 텍스쳐를 활용해 굴절된 듯한 정서적 시각을 제공하는가 하면, 현악의 텍스쳐의 정교한 레이어링으로 앰비언트적 공간을 재현하는 등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곡 또한 여럿 포함하고 있다. 얼핏 보면 다양성을 지닌 복합적인 표현을 나열한 것 같은 인상으로 전달될 수 있지만, ‘플랑크톤과 고래상어’라는 타이틀과 개별 곡의 제목을 통해, 이 모든 트랙이 마치 하나의 생태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과 몰입을 제공하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앨범은 마치 낯선 세계를 탐험하며 마주하는 다양한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은유적이면서도, 때로는 세밀한 묘사적 표현을 함께 담아내고 있어 그 정경에 도달하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점을 음악을 통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바다만큼 넓은 다양한 장르적 표현을 다루면서도, 각각의 모든 곡이 심해의 수심만큼 깊이 있는 표현을 담고 있어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