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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ia Block - Innocent Passage in the Territorial Sea (Room40, 2021)

komeda 2021. 11. 23. 23:27

미국 미디어 아티스트 겸 작곡가 Olivia Block의 앨범. 올리비아는 음악 외에도 설치 전시와 사진 등의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음악은 현대 예술의 일부로 기능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은데, 1990년대 말부터 이어진 음악 활동 또한 다양한 실험적 구성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사운드를 통해 일상을 조직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반대로 주변의 소리들과 합성된 음향을 이용해 음악적 형식을 완성하는 등 남다른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그녀의 난해하고 급진적인 표현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올리비아의 작업을 꾸준히 살펴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가 소리를 조직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는 무척 명료하지만, 어쩌면 선입견으로 인해 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반성과 더불어, 음악 그 자체보다는 감상 이후 경험하게 되는, 부정과 긍정의 여부를 가늠하기 힘들어 모호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정신적인 대미지(sic!) 때문이다. 이번 앨범 또한 예외는 아니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외상을 남긴다. 신서사이저에 의해 만들어진 베이스, 필드 리코딩, 멜로트론, 루프 테이프 등 비교적 단순한 악기 구성을 통해 레이어가 하나씩 점층된 사운드 트랙을 완성했는데, 이번 작업만의 특징이라면 그 구성이 복합적인 펄스를 만들어내며 예측하기 힘든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리비아는 봉쇄 기간에 이 작업은 완성하면서 의도적으로 환각을 유도하는 버섯을 먹으면서 비현실적 감각에 의지해 소리를 탐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낮음 음역대의 베이스에 반복적인 패턴을 바탕으로 그 위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연속적인 사운드의 레이어를 중첩시켜 마치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한 정서적 디스토션을 완성한다. 초저역까지 깊게 떨어지는 베이스는 단순한 두통을 넘어서 멀미로 이어지는 육체적 고통을 유발하는가 하면, 변화무쌍하면서도 초현실적인 사운드의 플로우를 따라가다 보면 섬광증을 겪는 등, 마치 올리비아의 환각이 음악을 매개로 고스란히 내 몸에 전이된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 방송에서 음악은 유일하게 허용된 합법적인 마약이라는 소리를 하곤 하는데 이 앨범을 듣지 않고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분명 헛소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20년 가까이 술조차 입에 대지 않은 청렴(?)한 생활을 해온 나에게는 자주 하고 싶지 않은 무척 힘든 경험이었지만, 오직 음악만을 이용해 이와 같은 초현실적 몽환을 몸의 감각에까지 전달한다는 점에서 기억될 듯하다. 타이레놀이 필요한 앨범이다.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