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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lip Wilkerson & Chris Russell - Dark Measures (Spotted Peccary, 2021)

komeda 2021. 12. 15. 23:20

영국 프로듀서 겸 전자음악가 Phillip Wilkerson와 미국 앰비언트 뮤지션 Chris Russell의 협업 앨범. 둘 다 앰비언트 계열의 일렉트로닉을 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적 명암은 서로 반대 지점에 대칭을 이룬다는 느낌을 들 정도로 다르다. 필립의 경우 다분히 몽환적이면서도 공기 속 깃털의 흩날림이 연상되는 사운드라면, 크리스는 그보다 더 아래 지표 가까운 곳에서 무거운 철 구조물이 부식해가는 듯한 모습이 떠오르는 무거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 둘이 모여 어떤 조합의 음악을 선보일 것인가에 대해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느낌에서 드러나는 명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마치 서로를 거울로 마주 보는 듯한 묘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의 Vague Traces (2014)에서의 협업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른 표현을 대질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음악적 언어와 접근을 구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번 앨범 또한 이들의 전 협업 작업과 비슷한 경험을 제공해준다. 다만 전작에서는 비교적 밝은 톤의 사운드를 중심으로 대비와 조화가 이루어졌다면, 이번 앨범의 경우 타이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전보다는 어두운 무게감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작이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는 듯한 분위기라면 이번 작업은 깊은 밤 별과 달의 희미한 빛에 의존해 주변을 관찰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분위기라, 두 앨범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정서적 대조도 흥미롭다. 실재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각 곡의 제목은 음악이 묘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인덱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표제적인 성격은 물론 묘사적인 특징도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제목이 인도하는 바에 따라 감상을 지속하는 재미와 몰입도 남다르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다양한 톤과 사운드의 대비가 눈에 띄는데, 모듈러 신서사이저 특유의 펄스 조작에서부터 디지털 혹은 VST를 이용한 세밀한 큐레이팅과 패칭에 이르는 무척이나 복합적인 음향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 조합에서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밤의 고요와 긴장을 아우르는 폭넓은 공간적 경험도 함께 제공하는 통합적인 앙상블은 인상적이다. 각자의 작업에서 느끼기 어려운 둘의 시너지가 응축된 작업임은 분명하다.

 

202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