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ver Vex - Hypnagogia (Room40, 2022)
전자음악가 Quiver Vex의 앨범. 최근 몇 년 동안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단편적인 싱글 몇 편을 꾸준히 발매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경력이나 개인 이력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없다. 이번 앨범은 QV의 첫 풀타임 리코딩으로 알려졌는데, 단순한 컴필레이션 수준의 작업을 넘어 음반 전체를 하나의 테마로 엮어 구성한 점은 분명 인상적이다. 앨범은 ‘혼몽' 혹은 ‘최면증' 등으로 번역되는, 각성에서 수면으로 이어지는 과도기 상태의 정신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VQ 자신이 수면 장애와 관련한 여러 실험에 참여하며 경험한 것을 바탕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의 경우 이와 같은 테마는 몽환이라는 통상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지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여 감각의 다양한 상태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평온을 느끼며 온전한 숙면에 기분 좋게 이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혼재에 따른 불안은 일상적이면서도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낯섦과 힘겨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불명확성과 불안을 극대화하여 쾌락의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 사이키델릭이라면, VQ의 표현은 그보다 더 폭넓은 다양한 양상을 포괄한다. 장르적으로는 앰비언트로 정의할 수 있고, 일렉트로닉을 이용한 그 표현 또한 나름의 인과성을 지닌 일관된 양식을 보여주면서, 칠아웃에서부터 다크 앰비언트에 이르는 다양한 최면증의 경험을 포괄한다. 최면증의 경계적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서로 이질적인 요소와 텍스쳐를 배열하고 대치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거친 질감의 드론 위에 투명한 톤의 벨 사운드를 조합해 극적 대비와 긴장을 보여주는가 하면, 고전적인 신서사이저의 평온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느린 플로우의 코드 진행을 통해 익숙한 안정감을 묘사하는 등 그 표현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그 특정한 상황에서의 경험이 지닌 모호함과 불명확함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앨범은 전체적으로 일정한 토널 레인지를 넘어서지 않는 한정적인 공간만을 활용하고 있으며, 미묘하게 전달되는 로우-파이를 필터링해서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듯한 정서적 텍스처를 담아내고 있다. 대부분의 감상자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지만, 이 안에 담고 있는 경험 자체가 일상적이기 때문에, 앨범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은 참으로 미묘하여, 말 그대로 경계적이다. VQ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음악을 완성했지만, 그 표현에서는 나름의 보편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현실의 일부를 드러냈다는 느낌 때문에 매력적으로 전달되는 앨범이다.
2022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