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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faele Grimaldi - Icon Song/s (Believe, 2021)

komeda 2021. 11. 11. 21:16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Raffaele Grimaldi의 앨범. 2000년대 중후반 유럽의 여러 콩쿠르는 물론 작곡 경연에서도 수상하며 데뷔 초부터 확실한 존재감을 확인시켜준 뮤지션이다. 독주자로 유명 오케스트라나 뮤지션들과의 협연을 펼치는 동시에 작곡은 물론 제작자와 지휘자로도 활동하면서 그의 작품은 여러 다양한 앙상블을 통해 연주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라파엘은 연주자로서의 개인 작업도 꾸준히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동안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마치 개인의 음악적 표현을 연주를 통해 정교하게 표출하기 위한 많은 고민의 흔적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의 표현은 단순히 고전적인 양식에만 머물지 않고 흔히 말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다양한 경향성을 수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실험적인 일렉트로닉을 통해 음악을 구성하는가 하면, 펠드 한 업라이트를 이용한 공간 속에서 일상적 표현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음악적 모색과 접근을 시도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근 일련의 미니 앨범 형식으로 선보인 Re:Interpretations Pts. I-III (2020) 시리즈로 클래식의 대표적인 곡들을 일상적 공간 속에서 재해석한 작업인데, 이는 존 케이지의 원곡을 대상으로 하는 In a Landscape / Dream / Haiku (2021)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고전에 대한 재해석은 마치 라파엘의 음악적 표현에 대한 자기 확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오리지널을 연주로 완성하는 과정에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음을 이번 앨범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녹음에서는 독주 공간을 연상하게 하는 톤 사운드의 조절과 리버브의 구성을 통해 기존 작업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본질에서는 기존 고전에 대한 재해석 과정에서 내면화된 자신만의 언어와 표현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곡의 제목을 네 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실재 대상이나 추상적 개념으로 하고 있어 다분히 강한 표제적 성격을 암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트랙 또한 길이 2분 전후로 이루어져 있어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각 곡의 테마들은 간결하고 그에 따른 진행 또한 명료하여, 그만큼 각각의 개별적 특징 또한 밀도 있게 드러난다. 이와 같은 대목에서 이번 앨범에 기울인 작곡에 대한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곡의 의미에 집중해 가장 적절한 타건을 구사하는 세밀한 연주 또한 인상적이다. 마치 군더더기 없는 서술로 곡의 타이틀을 이루는 개념적 테마들을 음악으로 표현한 듯한, 다분히 옵세시브 하면서도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