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ecca Nash - Redefining Element 78 (Whirlwind, 2022)
영국 피아노/키보드 연주자 겸 작곡가 Rebecca Nash의 앨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재즈 뮤지션 중 하나로 손꼽히는 레베카는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에서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몰입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재즈 씬에 몸담고 있는 현재에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 초 연주자로 데뷔했고, 주변 동료들이 주도하는 여러 그룹을 포함해 자신이 리드하는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음악적 영향력을 넓히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레베카가 리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뮤지션들 중 누군가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면 그곳에서는 사이드맨으로 참여하는 식의, 가까운 몇몇 음악 동료들 사이에 일종의 재능 품앗이를 하는 듯한 상호 협력 관계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베카가 이끌었던 Atlas 프로젝트에서, 그들 인맥과 함께 이어온 음악적 협력만 보더라도, 그 관계는 마치 음악 공동체의 유연한 활동을 보는 듯하다.
이번 앨범은 레베카의 실질적인 데뷔 Peaceful King (2019)의 후속이다. 해당 앨범은 레베카의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며, 사실상 아틀라스의 멤버들이 참여하고 있어, 오랜 시간 그녀가 공들여 왔던 자신의 음악 세계를 실현한 작업인 셈이다. 재즈의 형식적 구성과 그 표현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어린 시절 몰두했던 주변의 여러 장르적 요소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어, 레베카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요약하기도 한다. 인상적인 대목은 그녀가 재즈의 기본적인 전통에 확고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으로, 해당 장르가 지닌 현재적 확장성과 개방성을 전통에 입각한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레베카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 녹음에는 전작에도 참여했던 트럼펫 Nick Malcolm과 드럼 Matt Fisher를 비롯해 일부 트랙에서 일렉트로닉스 Chris Mapp이 함께하고 있어, 일정 부분 전작과의 연속성을 담아내고 있다. 이들 외에도 색소폰 John O’Gallagher, 기타 Jamie Leeming, 베이스 Paul Michael를 비롯해 부분적으로 일렉트로닉 Nick Walters가 참여하고 있어, 평소 오랜 음악적 협력을 이어왔던 다수의 동료들로 녹음이 완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앨범은 2019년 Bristol Jazz Festival의 의뢰로 완성한 여섯 곡에 두 곡을 더하고, 기존 밴드 편성에 색소폰을 더해 녹음한 것으로, 곡의 제목이 모두 Platinum, Osmium, Rhodium, Iridium, Ruthenium, Palladium 등의 백금족 금속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수의 멤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합을 맞춰왔다는 점이 이번 앨범의 특징을 완성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정교한 음악적 합을 바탕에 둔 안정적인 앙상블을 강조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확장하며 드러나는 개인의 창의적 표현을 충분히 개방하기도 한다. 집단 역량을 통해 완성하는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개별 능력이 발현할 수 있도록 구성을 배열하는 방식은 다분히 전통적인 재즈의 진행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솔로의 공간을 개방할 때 나머지 파트를 조직하는 방법이나, 이를 다시 전체적인 합으로 다시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정교함은 무척 세련되었다. 개인의 창의적인 기량과 표현은 앙상블의 균형에 수렴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순간순간 드러나는 의도된 긴장 또한 연주의 미적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넓은 공간 연출을 보여주면서도 개별 사운드에 풍부한 부피감을 담아 균형감 있는 밀도를 유지하고 있어, 매시브 한 울림 속에서도 각 악기의 연주에 선명함을 담아내고 있다.
주변 장르의 다양한 요소를 유연하게 활용하면서도, 이를 재즈의 기본적인 언어와 표현에 적합한 방식으로 녹여내며, 그 어떠한 이질감도 없이, 풍부한 음악적 뉘앙스를 완성하는 과정 역시 무척 세련되었다. 레베카의 작곡가로서의 기량 외에도 이를 합의의 공간에서 완성하는 리더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인상적인 작업이다.
2022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