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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ardo Donoso - Progress Trap (Denovali, 2021)

komeda 2021. 11. 8. 22:08

미국에서 활동 중인 브라질 출신 전자음악가 Ricardo Donoso의 앨범. 히카르두 음악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신서사이저나 시퀀서로 연출된 공간에 유연한 비트를 활용해 강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정형화된 일련의 패턴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라 마치 리얼 퍼커션을 현장에서 즉흥적 모티브에 의존해 연주하는 듯한 생생한 비트는 곡의 진행에 따라 능동적인 개입과 구성을 이루는데, 타악기 연주자로서의 그의 경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신서사이저나 스텝 시퀀싱에 의해 연출된 다양한 사운드와 구성적인 합을 이루며 히카르두 특유의 고유한 표현을 완성한다. 특히 이번 앨범의 경우 전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일관된 분위기는 물론 사운드 자체가 보여주는 공간적인 밀도에 있어 완성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곡들은 무척 단순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단출한 패드, 스텝 시퀀싱 혹은 아르페지에이터를 이용한 라인, 그리고 전통적인 퍼커션 사운드뿐만 다양한 특징을 지닌 악기의 소리를 활용한 비트, 여기에 곡의 디테일과 관련한 부수적인 노이즈나 샘플링 등으로 이루어진다.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이러한 사운드들은 서로 지나친 중첩을 이루지 않도록 교차하며 진행을 이루는데, 플로우에 따른 조합을 통해 곡들은 자연스럽게 단편적인 서사를 완성하며 나름의 표제적 내러티브를 이루기도 한다. 이와 같은 모습은 기존 트랩 음악과도 어느 정도 유사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힙합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 트랩과는 장르적으로 다른 지반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오히려 IDM에 근접한 특징들을 부각하기 때문에 앨범의 제목을 '프로그레스 트랩'이라고 붙여 일정한 차별점도 시사한다. 여기에 개별적인 요소들의 위상이 부각되도록 배열함으로써 풍부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특히 진행에서 구성되는 짧은 내러티브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대부분 3분 전후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곡들이기에 이와 같은 공간감은 밀도 있는 몰입을 유도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분히 무거운 분위기라 오히려 더 극적 긴장을 전달하고 있어 이전 작업들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앨범이다.

 

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