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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Skelton - Border Ballads (Corbel Stone Press, 2019)

komeda 2019. 7. 19. 18:10

 

영국의 작곡가 리처드 스켈턴의 신보. 그의 음악은 늘 우울하고 세기말의 적막감이 함께한다. 2004년 부인과 사별 이후 시작한 음악이 어쩌면 자신의 비극을 대변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는 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앨범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경계에 있는 시골 도시에 2년 동안 살면서 경험한 개인의 정서를 음악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그의 음악 대부분이 긴 호흡에 만연체로 이어지는 장시간의 연주곡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번 앨범에는 2~6분 이내의 짧은 피스로 이루어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물론 데뷔작 Marking Time (2008)을 비롯해 단편 중심의 초기 작업과의 연관성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정서적 특징을 제외하고 표현 방식이나 장르적 배경은 지금과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곡 길이가 간결해졌다고 해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 작곡의 문법적 맥락 또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으며, 미니멀한 접근 속에서 정교하게 구성되는 현악과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기악의 텐션 역시 이번 앨범의 특징을 이룬다. 기존 장편 구성의 곡 진행에서는 섬세한 바리에이션을 통해 새로운 모티브의 개입을 허용하고 이를 다시 전개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번 단편의 경우 기존 롱 피스 내의 세부 동기들을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고 집중하는 간결함이 눈에 띈다. 이번 앨범이 지리적 혹은 자연적 특성이 반영된 개인의 경험에 기초해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말하지만 정작 곡의 제목들은 다분히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다. 경험과 표현이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직관적 태도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작가는 반복적 묘사의 디테일을 통해 경험과 표현 사이의 공간을 채운다. 스켈턴의 음악적 에센스는 이번 앨범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9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