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in Henkel - Restless (7K!, 2022)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Rubin Henkel의 앨범. 루빈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이미 10대 시절부터 작곡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 교육을 통해 즉흥 연주의 재능을 확장하는 한편 작곡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며, 현재는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를 비롯해 광고 등의 미디어를 위한 작업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루빈의 첫 앨범인 Ruhe (2018)는 10대 시절 작곡했던 곡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녹음한 연주를 담고 있는데,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은 물론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통찰을 반영하고 있어 깊은 인상을 준다. 기억 혹은 기록에 대한 재구성은 이번 작업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 접근을 통해 완성된다. 루빈은 캐나다 출신 미디어 및 사진작가인 Philip Pocock의 아들로, 봉쇄 기간 중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번 앨범에 대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루빈은 동서 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1989년 베를린에서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부모님으로부터 당시의 사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의 분열상과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그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당시 베를린 시민의 모습에서 강한 유대감을 경험하고, 그중 12장의 작품을 선택해 이를 각각의 트랙으로 앨범에 담게 된다. 루빈의 전작이 과거 자신과의 대화였다면, 이번 작업은 30여 년 전 아버지와 그 시대의 사진 속 인물과의 ‘쉼 없는' 이야기인 셈이다. 작곡은 규범적인 형식적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은 준칙에 따라 세부적인 구절마다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섬세하게 연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때문에 하나의 곡에서도 풍부한 음악적인 내러티브를 완성하고 있으며, 여기에 인상적인 라인들이 더해지면서 시적인 흐름을 연상하게 하는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은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진행을 보여주고 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미묘한 전자 악기의 활용을 통해 표현의 디테일을 보완하는가 하면, 때로는 오버 더빙을 통해 밀도를 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전곡에 걸쳐 피아노의 서스테인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의 여유를 길게 두고 있어, 듣는 이의 정서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현실의 공간감을 신비롭게 채색한 듯한, 그래서 조금은 아련하면서도 회고적인 느낌을 주는 듯한 리버브에, 투명하면서도 쉽게 부서질 듯한 여린 톤으로 튜닝된 업라이트를 이용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는 과거의 기록과 타인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굴절시켜 작가의 의식 혹은 서정을 반영하기에는 적합한 사운드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특히 다른 세대, 다른 사건을 통해 조직된 음악적인 감수성은 인간 존재의 취약성에 방점을 찍는 듯하며, 역설적이게도 이를 통해 막연하지만 근원적일지도 모르는 유대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곡 안에도 다양한 라인으로 이루어진 복합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피아노라는 한정적인 물리적 표현에 의지해 완성하고 있어, 이후 이와 같은 원곡이 리믹스나 리워크를 통해 다른 음악적 양식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20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