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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80F - 28 (i8i, 2021)

komeda 2021. 6. 24. 18:41

미국 전자음악 솔로 프로젝트 S280F의 앨범. 상품 코드와 같은 활동명 외에 그녀의 개인적 프로필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전혀 없을 만큼 철저한 익명성 뒤에서 작업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녀의 음악들은 단편적인 싱글보다는 이와 같은 앨범 형식 속에서 확실한 특징과 매력이 더 부각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의 여러 싱글 작업에서는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면, 이번 앨범을 통해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음악적 세계관 속에서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이번 앨범은 마치 원시 밀림 한가운데 만들어진 문명사회에 등장한 에일리언이 그 경계에서 겪는 서스펜스와 판타지는 물론 정서적 갈등과 심리적 불안까지 표현한 SF 사이콜로지 시네마를 보는 듯한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서사를 아방가르드한 초현실적 기계적 음향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피아노와 현악 등의 연주 악기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모던 클래시컬한 취향이 반영된 연주가 등장하여 강한 대비와 대치를 이루고 있다. 전투나 사냥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에는 웅장한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이때 활용되고 있는 디테일한 필드 리코딩은 물론 효과음들마저 무척 사실적이어서 마치 시각 정보를 고스란히 음악으로 재현하고 있는 라디오 무비를 청취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내면의 정서를 다루는 듯한 장면에서는 클래시컬한 연주 악기는 물론 세밀한 신서사이저의 사운드를 활용해 불안, 고립, 두려움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상황과 정서의 대비를 이루는 이와 같은 사운드의 대치는 전체적인 스토리 텔링 과정은 물론 하나의 단락을 이루는 트랙 안에서도 고스란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곡 하나에서도 강한 극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 상당히 깊은 인상을 전달한다. 애써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앨범을 듣다 보면 이 모든 이야기의 흐름과 전개는 물론 각각의 구체적 상황들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전개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만큼 뛰어난 사운드와 음악적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플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9개의 트랙으로 구분된 앨범이 아닌 단 하나의 곡으로 올려져 있어서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어쩌면 한 편의 영화처럼 감상하라는 의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앨범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영화 한 편 본 기분이다.

 

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