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 McCorry - The Illusion of Beginnings and Endings (Whitelabrecs, 2021)
영국 첼리스트 겸 작곡가 Simon McCorry의 앨범. 사이먼은 20년 가까이 무대 공연 및 영화를 위한 사운드 디자인과 음악을 만들었고 설치와 전시를 위한 다양한 작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그의 음악은 시각과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대로 그의 음악은 청각의 신호를 통해 시각과 공간을 묘사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여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사실적인 전달보다는 인화지에 감광된 빛을 통해 자신만의 굴절된 시각으로 이를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첼로 연주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루프, 오버더빙, 필드 리코딩, 신서사이저 등 다양한 장치적 요소를 활용해 고유한 음악적 앰비언스를 만들어낸다. 개인 작업 차원에서 완성된 이번 앨범 또한 이와 같은 사이먼의 음악적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니멀한 라인의 루프 트랙 위로 다른 연주를 레이어링 하여 사고가 분열하는 듯한 음악적 플로우를 완성하는가 하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첼로의 선율들을 중첩하며 마치 모호한 빛의 흐름들을 소리로 포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모든 작업들이 하나의 균일한 텍스쳐나 리버브로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각자 고유의 공간적 특징을 담아내기라도 하듯 서로 다른 특성들이 집합을 이루고 있는 생경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로우-파이를 염두에 둔 톤 보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나름의 균일한 정서적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 곡에서는 투명하고 차가운 공기를 뚫고 소리가 전해진다면, 어느 트랙에서는 먼지로 덮힌 창을 통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듯한 디스토션을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시각이나 공간을 청각화 했다는 인상과 더불어, 이질적이고 불균형을 이루는 정보들의 반복된 진행과 그 과정에서의 굴절을 통해, 사이먼 자신이 현실에서 경험한 불안한 일상도 함께 담아낸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받게 된다. 본인은 각각의 트랙에 추상적이고 선엄적인 의미를 지닌 제목을 달아 그 의도를 사적인 사고의 영역으로 돌리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 공허함이 직설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인 느낌이 옳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다만 듣는 사람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앨범이라는 점만 언급하고 싶다.
2021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