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mens - Intersections (First Terrace, 2022)
Specimens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영국 전자음악가 겸 프로듀서 Alex Ives의 앨범. 알렉스의 초기 음악 활동은 게라지 록과 포스트-펑크 계열의 밴드에서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면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한 여러 편의 앨범에 참여했고 유명 그룹의 오프닝을 담당하는 등 나름의 인상적인 성과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지며, 록과 관련한 그의 관심과 활동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비해 그의 개인 활동의 경우 밴드와는 전혀 다른 장르적 지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2010년대 초반 방구석 프로젝트로 시작한 작업을 2015년 카세트테이프 형식으로 발매하면서 현재의 Specimens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First Terrace 레이블을 출범해 정기적인 출반 작업도 함께하고 있다. 알렉스의 개인 작업은 드론을 활용한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을 보여주면서도 실험적인 사운드의 조합을 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본인 스스로 무거움과 불편함을 포함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마치 자신의 정서나 감정을 우회하지 않고 마치 소리를 이용해 거친 크로키로 표현한 듯한 생소함을 지니기도 한다. 이는 특히 감염병 사태로 인한 봉쇄 초기의 정서적 파편을 다룬 미니 앨범 Café Songs (2020)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평온한 일상을 상징하는 타이틀과 달리 고립과 단절의 환경에서 경험하게 되는 불편한 안도감을 상징적인 기악적 사운드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반면 이번 앨범에서는 이러한 무거움과 불편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헛헛한 기분을, 마치 일상 주변 누군가와 조심스럽게 마음을 나누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이전 작업과는 사뭇 다른 정서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이번 작업의 경우 그 타이틀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Peter Broderick, Midori Hirano, Benoit Pioulard, Emilie Levienaise-Farrouch 등과의 개별 협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내용 또한 서로에 대한 친밀감 혹은 유대에 기반을 두는 콜렉티브 한 사운드의 조합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협업에 대해 알렉스는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탐구한 기록"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앰비언트라는 공통의 음악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뮤지션들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음악적 접근 방식과 그 표현에서 드러나는 개별적 차이는 어느 정도 유연하게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마치 ‘교차로'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의 우연적 조우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듯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동일한 시공간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공감대 또한 내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알렉스와 파트너를 이루는 상대 뮤지션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게스트의 플로우에 자신의 드론을 제안하며 반응의 연속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알렉스의 사운드는 마치 일련의 리엑션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 또한 자신의 플로우 속에 이에 대한 반응을 반영하며 상호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곡의 흐름을 완성하는 의존성을 지니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작업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긴밀함을 전제로 응집이나 밀착의 규범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렉스와 상대 뮤지션은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가 편안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개입이 아닌 반응을 통해 관계를 완성하고 있으며, 이는 앨범이 보여주는 독특한 정서적 분위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번 작업에서 보여준 이러한 변화의 이유에 대해 알렉스는 따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일상과 관계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완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2022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