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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ncer Zahn - Pale Horizon (Cascine, 2022)

komeda 2022. 5. 16. 21:15

미국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 Spencer Zahn의 앨범. 스펜서는 2000년대 중반 투어링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해 조금씩 다양한 장르적 경험을 축적했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을 선보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전해진다. 전자음악의 텍스쳐에 피아노와 업라이트 베이스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조합한 그의 이전 앨범들은 복합적인 장르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단순히 모던 고전적이 경향적 특징을 지니는 일렉트로닉이라는 표현만으로는 특정하기 힘든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하기도 한다. 때로는 재즈 특유의 스케일과 주법을 활용한 접근을 보여주는가 하면, 아메리카나로 통칭하는 미국식 전통을 연상하게 하는 멜로디로 귀를 사로잡기도 하고, 익숙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활용해 앰비언트적인 표현을 응용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다중적인 표현을 활용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스펜서가 선보인 몇 장의 앨범들은 각자 고유의 음악적 특징을 반영하면서도, 각기 다른 편성과 구성을 통해 장르적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봐서는, 어쩌면 이는 뮤지션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다양한 장르적 표출이 고독 혹은 쓸쓸함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주변과 일상을 향한 따듯한 시선으로 수렴된다는 점은 스펜스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다양한 뮤지션과 악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존 앨범들과 달리, 이번 작업에서는 피아노와 베이스 단 두 대의 악기만으로 녹음을 진행하고 있어, 복합적인 장르적 특징은 물론 그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더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피아노와 베이스 단 두 대의 악기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성을 통해 자기 내면과 인터플레이를 펼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베이스는 고유의 어쿠스틱을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하는 반면 피아노의 경우 리버브나 딜레이를 통해 독특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고, 곡에 따라서는 로우-파이를 연상하게 하는 미묘한 디스토션으로 색다른 연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피아노에 더해지는 이와 같은 효과들이 피아노의 기본적인 사운드를 크게 왜곡하거나 변질시키지는 않지만, 특유의 레조넌스를 통해 세밀한 앰비언스를 연출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정서적 반영을 잔향 속에 묻어두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자칫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는 피아노지만 아름다운 멜로디가 이 모든 것을 수용하며 인상적인 서정을 완성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주변을 탐색하고 선율로 담아내는 피아노에 앞에서 베이스는 마치 그 모든 순간을 포용하기라도 하듯, 굳건하면서도 유연하게 자리를 차지하며 인터플레이를 이어가고 있어, 연주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적 특성들을 표출하고 있어 여전히 스펜서다운 완성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2022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