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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Fors - It's Nothing, but Still (Hallow Ground, 2022)

komeda 2022. 8. 21. 22:44

 

미국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 겸 전자음악가 Steve Fors의 앨범.

 

2000년대 말, 스티브는 Christopher Miller와 드론을 기반으로 하는 듀엣 The Golden Sores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처음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2010년대 초부터 Aeronaut라는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일련의 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스티브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소스의 소리에 대한 접근을 개방함으로써, 사운드 그 자체가 발생시키는 독특한 물리적 효과를 음악에 반영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색감과 정서적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연주를 육체적 행위로 정의하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소리의 힘을 이용해 물리적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와 같은 과정은 내면의 정서를 음악이라는 물질적 형식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힘겨운 노동과도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스티브의 음악은 첼로를 비롯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비롯해 일렉트로닉과 필드 리코딩 등 다양한 소스를 중첩하여 조밀하면서도 복합적인 드론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더하는 대신, 이를 시대적인 상황과 관련해 구체화함으로써 나름의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번 앨범은 2019년에서 202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스티브는 자신의 만성 폐질환을 모티브로 앨범의 테마를 제시하면서, 여기에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를 연관시키고 있어, 시대와 관련한 절망과 분노에 대한 음악적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앨범은 스티브가 거주 중인 스위스에서 제작했지만,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채집한 필드 리코딩은 브루클린의 영안실, 성당, 도로 등의 현장 소리를 담고 있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우리의 비극적인 시대상황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스티브 자신의 이름으로 발매한 이번 앨범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현악기의 여러 라인을 중첩하여 폴리포닉 한 사운드 외에도 복합적인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이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스트링 계열의 복합적인 사운드는 때로는 일련의 코드를 완성하며 레가토를 이용한 긴 웨이브의 플로우를 연출하는가 하면, 여기에 세츄레이션이 강하게 침전된 현악 연주를 레이어링 하여 정서적 반영을 강하게 암시하는 음악적 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개별 사운드 소스의 다양한 텍스쳐를 강하게 부각하는 동시에, 이들을 서로 어떤 완충 없이 직접 대질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노이즈 필드까지 개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분히 혼란스러울 듯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이 적절한 응집을 이루며 깊이 있는 밀도와 중량을 보여주고 있어, 그 자체로 복합적인 정서적 반영을 묘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극적으로 개입하는 필드 리코딩 덕분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Lo-Fi보다는 Sci-Fi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며, 이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비현실을 스티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관조적이지만 나름 진솔하게 진행되는 피아노 연주에, 이펙트에 의해 굴절되고 뒤틀린 첼로를 카운터로 대질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희망과 절망적 정서를 동시에 다루는 듯한 직설적인 표현은, 어쩌면 이번 앨범의 주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기악적인 구성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대신, 사운드의 다양한 특성을 중첩하여 오늘날 우리의 다면적인 정서적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스티브가 표현하는 정서적 불연속성과 다중성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여, 의외의 위로를 전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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