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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Rogerson - Retreat to Bliss (Western Vinyl, 2022)

komeda 2022. 3. 29. 21:04

영국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Tom Rogerson의 앨범. 데뷔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톰이 보여준 음악적 궤적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영국 왕립음악원 졸업 이후 그가 선택한 음악은 임프로바이징 연주였고 이후 한동안 재즈 무대에서 활동을 펼쳤으며, 2007년에는 Three Trapped Tigers를 결성하여 재즈, 록,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창의적인 성과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비교적 최근에는 Brian Eno와 작업한 Finding Shore (2017)를 발표하는 등, 마치 단 한순간도 스스로 정체되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변화를 이어왔다. 브라이언과의 작업 이후 5년 만에 발매한 이번 앨범에 대해 그은 “사적인 고해성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실제로 이번 앨범의 곡을 쓰는 동안 아이를 낳았고 부모를 잃었으며 자신은 희귀 혈액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기간 생활했던 베를린에서 어린 시절 부모님과 생활했던 고향 서퍽으로 돌아와 작곡을 끝마쳤고, 마침내 이번 앨범이 완성되었다. 이와 같은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마치 피아노를 이용해 사적 대화를 이어가는 듯한 진지함과 자기 성찰의 태도가 엿보인다. 그 모습은 마치 피아노에 자신의 일상을 고해하는 듯한 겸허함이 느껴지기도 하며, 읊조리는 듯한 보컬에는 미묘한 일상의 떨림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한 진솔함과 애잔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모든 연주는 “영원한 동반자이자 최악의 적”이라고 표현한 피아노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 곡에서는 직접 가사가 달린 곡을 부르고 있고, 미세한 전자 음향의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 연주를 듣다 보면 톰에게 있어 말보다는 피아노 자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세밀한 우울에서부터 격한 감정의 동요에 이르기까지, 타건으로 건반 위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정서는 다분히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는 진솔함을 간직하고 있다. 처음으로 가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진지하게 임하려고 했다는 그의 말처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은 그의 피아노와 무척 닮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 “Retreat To”와 같은 곡에서 톰은 격한 감정의 타건을 이어가면서도 차분한 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어, 그 묘한 대비만으로도 뮤지션 내면의 복잡한 정서가 그대로 전달되는 분위기다. 앨범 전체에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드러나는 전자 음향의 효과는 피아노 서스테인에 담긴 여운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가 하면, 리버브 그 자체만으로도 피아니스트가 경험하는 고립감을 밀도 있게 재현하는 등 앨범 곳곳에 많은 섬세함이 묻어나 있다. 톰의 첫 솔로 작업이며, 현대 작곡의 경향적 특징을 내포하는 깊이 있는 음악적 성찰이 담긴 앨범이다.

 

202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