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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asinski & Janek Schaefer - . . . On Reflection (Temporary Residence Ltd., 2022)

komeda 2022. 5. 4. 22:34

미국 음악가 William Basinski와 영국 Janek Schaefer의 공동 작업 앨범. 윌리엄과 자넥 모두 실험적인 장르에 헌신하며 음악이 지닌 의미를 우리의 삶과 연관해서 보여준 대표적인 뮤지션들이다. 윌리엄은 테이프 루프를 통해 삶이 소멸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자넥은 바이닐을 이용한 사운드 콜라주로 일상이 지닌 파란만장한 복합성을 소리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이들의 상징적인 작업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조작으로 얻어진 결과물로 보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때로는 시대의 비극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때문에 이 두 음악가의 교류는 어쩌면 예정된 음악적 운명에 따른 필연적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둘은 작업을 위해 뉴욕과 런던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거리 외에도, 2014년에서 2022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각자가 지닌 기술적 접근과 정서적 간극 또한 함께 극복해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아카이브에서 선택한 재료들을 조합해 42분에 이르는 긴 호흡의 음악적 흐름을 이어간다. 앨범에는 모두 5개의 트랙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의 악절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는 피아노 루프들과 드론 및 필드 리코딩을 통해 미묘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서로 다른 피아노 루프들이 중첩을 이루고 있어 그 공간적 묘사는 예상외로 복합적인 양상으로 드러나며, 하나의 반복이 무한한 순환을 이루는 단순함이 서로 정교하게 얽혀 있어, 쉽게 생각하기 쉬운 미니멀 한 진행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날로그적인 미묘한 텍스쳐들이다. 낡은 테이프의 질감은 물론 바이닐의 골에서 전해지는 듯한 노이즈 등은 윌리엄과 자넥의 이전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데, 오리지널 소스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디스토션을 포함하고 있어, 인위적으로 가공된 효과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달된다. 개별 음원 소스에 포함된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텍스쳐는 서로 중첩을 이루어 독특한 밀도를 구성하고, 이처럼 완성된 공간은 마치 여러 시간과 장소가 겹쳐진 듯한 독특한 콜라주를 연상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개입하는 드론과 필드 리코딩은 이 모든 우연적 필연을 하나의 연쇄로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매 순간 복합적으로 순환되는 피아노 루프들에 구체적 형상을 완성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이와 같은 세밀한 조합은 단조롭게 보이는 흐름 속에서도 우리의 일상에 대한 상상력을 개방하며, 동시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섬세하고 평온한 정서적 반영을 이루게 된다. 이번 작업은 2020년 세상과 이별한 Harold Budd에게 헌정하고 있어, 로우-파이의 텍스쳐 속에서도 피아노 사운드가 더 명료하게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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