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s End Girlfriend - Meguri (Virgin Babylon, 2018)
일본 뮤지션 Katsuhiko Maeda의 솔로 프로젝트 WEG의 신보. Last Waltz (2016) 이후 새로운 음악 세 곡을 담고 있는 EP 음반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기다렸지만, 이번 음반에는 어린 가족을 잃은 카츠히코의 슬픔을 담고 있어 반가운 신보라는 통상적 표현은 쓰기 힘들다. WEG는 2000년대 초반 데뷔 이후 포스트-록에 기반을 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우리와 나름 소소한 인연이 있다. 2000년대 중후반 국내에서 해당 장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무렵 일본의 Mono와 함께 내한하기도 했고, 배두나 주연의 일본 영화 "공기인형" (2009)의 음악을 맡는가 하면, 소설가 김연수는 WEG에서 이름을 따와 "세상의 끝 여자친구"라는 책을 발표한다. WEG 초기만 해도 포스트-록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확장 가능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모던 클래시컬과 슈게이즈의 경향성들을 고르게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만 해도 WEG의 음악은 마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201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예전과는 다른 음악적 형상들을 보이게 된다. 5분이 넘는 곡들이 등장하면서 음악적 묘사보다는 내러티브의 형식을 지닌 진행이 보이는가 하면, 장르 외적 표현들을 과감하게 활용하여 기존의 음악적 스텐스에서 벗어난 표현들이 전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Last Waltz에서 이와 같은 변화의 정점을 보여줬다면, 이번 음반에서는 서-본-결 구성의 22분 내외의 이야기를 서술함으로써 WEG의 또 다른 음악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번 음반은 포스트-록이라는 지형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으며, 과거 소품 같은 모습의 모던 클래시컬의 형상과도 전혀 다른 지점에서 편곡과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3박의 왈츠를 기본으로 록과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확장되는 장엄한 사운드 속에 인간의 모든 감정을 뒤섞은 듯한 타이틀 곡 "Meguri"는 그 어떠한 설명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강한 힘을 보여준다. 짧은 러닝타임이라 아쉬움을 갖고 EP를 듣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WEG의 대표작으로 손꼽고 싶은 음반이다.
201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