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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luvium - (Whirring Marvels In) Consensus Reality (Temporary Residence Ltd., 2023)

 

Eluviu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미국 작곡가 Matthew Robert Cooper의 앨범.

 

2000년대 초 데뷔 이후 매튜가 남긴 음악의 ‘잔류 퇴적물’은 전자음악이라는 제한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주변 장르와의 다양한 관계를 확인하며 늘 새로운 양식과 형식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앰비언트의 접근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기타, 피아노, 현악기, 호른 등과 같은 다양한 연주 악기의 레이어와 텍스쳐를 활용해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특징을 보여주는가 하면, 미니멀리즘이나 실험적인 모티브를 활용해 다양한 유형의 장르적 혼합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활용되기도 했으며, 동료 뮤지션들과의 여러 협업 프로젝트에서도 인상적인 다양한 성과를 축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여러 앨범들을 통해 각기 다른 음악적 결실을 선보였던 매튜는, 이번 작업을 통해 처음으로 리얼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을 완성한다. American Contemporary Music Ensemble, Golden Retriever, Budapest Scoring Orchestra 등의 멤버들을 포함, 세계 각국의 연주자들이 참여했고, 2020년과 2021년 팬데믹과 봉쇄로 인한 제한을 원격 회의와 지휘를 통해 극복하고 녹음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앨범은 T.S. Eliot의 “The Waste Land”와 Richard Brautigan의 “All Watched Over By Machines Of Loving Grace”를 모티브로 한다고 하는데, 서로 다른 시대 배경과 내용을 지닌 두 개의 시에서 매튜는 “의미에 대한 인류의 욕구”와 “인류와 기계의 상호작용”이라는, 현재성을 반영한 사고로 확장하고, 새로운 혁신과 기술 발전, 그리고 이와 관련한 고립주의와 확인되지 않은 낙관적 이상주의에 대한 음악적 발언을 담고 있다.

 

매시브 한 총체성을 지닌 오케스트레이션의 구성은 사적 표현이 주를 이루는 매튜의 음악과 적절한 균형점을 형성하며, 곡에 따라 각기 다른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며 해당 트랙의 특성을 강화한다. 때로는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독립적인 표현을 이루기도 하지만, 곡에 따라서는 사운드스케이프와도 같은 레이어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집합적 사운드의 총체가 연출하는 드론으로 작용하는 등, 기존 매튜의 음악에서 보여줬던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기능적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생생한 텍스쳐를 포함하는 연주 악기 특유의 배음과, 풀 오케스트라의 모든 요소적 특징을 활용한 공간의 구성이 연출하는 정교한 장엄함은 이전 매튜의 작업과는 전혀 다른, 이번 앨범만의 고유한 특징을 완성하고 있다. 펠트 한 톤으로 조율한 피아노에 오케스트레이션과 공간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적절한 리버브와 텍스쳐를 더하는가 하면, 일렉트로닉의 레이어 또한 어쿠스틱 연주와의 안정적인 배음을 고려한 튜닝을 보여주는 등, 기존 매튜의 캐릭터가 새로운 음향적 공간 속에서 안정적인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을 앨범 곳곳에서 살필 수 있다.

 

오케스트레이션은 마치 다양한 사운드의 레이어의 점층을 통해 완성한 정교한 음악적 구성물의 일부처럼 보이며, 그 활용 또한 정형화된 양식이 아닌 유연한 적용을 보여주며 매튜의 음악적 표현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유한 특징과 더불어 가장 놀라운 점은 이번 앨범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을 형상화하는 매튜의 자세에 있다. 팬데믹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녹음한 앨범이고, 이번 작업이 다루는 주제 의식 또한 다분히 크리티컬 한 내용이지만, 그 표현에서는 진화의 당위성을 포착하며 구체적 희망에 대한 강한 염원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 앨범의 발매가 때마침 엔데믹 선언과 맞물리며 매튜의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더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때로는 지닌 시간에 대한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 세계가 험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절, 인류의 새로운 순환을 위한 음악적 제안을 준비한 셈이다. 그의 음악적 발언은 구체적이고 정교하며, 인간의 감성을 깊이 있게 헤아리는 세심함을 포함하고 있다.

 

매튜의 초기 작업에서 보여준 앰비언트 심포니의 개념을 실재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재현했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이번 앨범이 지닌 고유한 테마와 그 표현에서는 새로운 창의적 도전을 담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매튜가 보여준 다양한 음악적 실험 속에서도, 일련의 연속성을 이어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으며, 그의 음악적 경험이 ‘퇴적’할수록 작법과 접근은 더욱 다채롭고 정교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매튜의 음악은 늘 자신의 새로운 정점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앨범이다.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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