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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 Penguin - Everything Is Going to Be OK (XXIM, 2023)

 

영국의 창의적인 어쿠스틱 일렉트로니카 트리오 GoGo Penguin의 앨범.

 

2012년 피아노 Chris Illingworth, 베이스 Nick Blacka, 드럼 Rob Turner 등 영국 Royal Academy of Music 출신 세 명의 엘리트 뮤지션이 모여 결성한 GGP는 재즈가 지닌 언어의 개방적 특성에 주목하고 그 표현의 확장을 담은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줬다. 주변 장르와의 유연한 관계를 통해 재즈의 경계를 넓혔으며, 통상적인 피아노 트리오의 표현 또한 새롭게 갱신하는 GGP만의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다. GGP는 지금까지 재즈, 일렉트로닉, 록, 미니멀리즘, 클래식 등의 요소들이 유기적인 상호 연관을 형성하며, 이와 같은 다면성을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통해 체계화된 양식으로 표출해 왔다.

 

XXIM과의 계약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GGP의 다면성을 “어쿠스틱 일렉트로니카”라는 정의로 구체화하고, 레이블이 지향하는 경향적 특성에 알맞은 섬세한 접근을 미니 앨범 Between Two Waves (2022)를 통해 보여준다. EP의 타이틀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연주 중심의 성격을 지속하면서도 전자 음악의 특징적 요소를 반영한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는가 하면, 진행 방식을 구조화하며 그 안에서 즉흥적 모티브를 활용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에서 원년 멤버인 드러머 롭이 그룹을 탈퇴하며 Jon Scott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GGP는 “창의성의 이견”이라고 이를 공식화하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전작의 EP에서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GGP의 음악적 갱신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강한 메시지를 담은 앨범의 타이틀인데, 롭의 탈퇴라는 GGP의 시련 외에도, 가족들의 죽음과 관련한 멤버들의 개인사가 반영된 제목이라고 전해진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 몇 년 동안 모든 인류를 힘들게 했던 위기에 대한 위로의 의미도 포함한다. 음악만 들으면 연주와 프로세스의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점은 GGP의 음악이 구조화된 양식 안에서 일련의 질서를 구성하며 진행을 구체화한다는 사실이다. 각 파트의 모든 연주는 일련의 반복적 속성을 지니며, 이와 같은 라인은 진행 속에서 마치 모듈의 조합에 의해 중첩을 이루는 듯한 방식으로 견고한 레이어의 구조를 완성한다. 이러한 음악적 플로우는 우연적 요소를 배제한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터랙티브 한 연관보다는 유기적인 조합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드러낸다. 개별 공간의 자율성은 물론, 즉흥적 모티브의 활용 또한 구조에 의해 정의되며, 임프로바이징의 특징 역시 간결하고 함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일렉트로닉의 작법을 악기 연주를 통해 재현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체계화된 양식과 이에 기반한 흐름을 보여준다.

 

베이스와 드럼이 완성하는 일련의 패턴을 통해 흐름을 이끌어가고, 피아노와 키 사운드는 간결한 테마를 제시하며, 마치 합의된 각자의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모습처럼 보인다. 때문에 이번 GGP의 음악이 경직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진행에 따른 세부 구성 및 각 공간의 성격을 세밀하게 조율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수많은 굴곡 속에서도 긴장과 이완을 여유롭게 다루며, 이를 통해 강한 역동과 절제된 서정을 담아내고 있다. 전체 공간을 강한 밀도의 에너지로 채우는 대신 개별 라인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조율한 점은 탁월하다. 곡의 성격이나 흐름에 따라, 같은 악기라도 다른 소리로 세밀한 조율을 통해 표현을 구체화한다. 피아노의 뮤트 페달은 물론 서스테인의 깊이로 매 순간 변화하는 소리의 특성을 담아내는가 하면, 프로세스를 통해 콤프레싱 된 톤의 조율을 통해, 연주가 개입하는 방식의 구체성을 표현하기도 하며, 드럼의 스네어 조차도 트랙에 따라 각기 다른 울림과 텍스쳐를 재현하는 디테일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개별 공간의 구체성은 트리오라는 GGP의 아이덴티티를, 구조화된 음악적 양식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개별 공간의 역량과 재능이 집약되었기에 GGP의 고도로 구조화된 음악적 진행이 가능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고, 반복적이고 축약적으로 표출된 각자의 표현 하나하나가 강한 몰입을 유도하는 큰 에너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은 물론, 퍼포먼스와 프로세스의 경계 또한 모호하지만, GGP의 이번 앨범은 이와 같은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음악이 아무리 고단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도, 음악은 애초부터 위로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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