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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Grandbrothers - Late Reflections (City Slang, 2023)

 

독일계 터키 피아니스트 Erol Sarp와 스위스 엔지니어 Lukas Vogel의 듀오 프로젝트 Grandbrothers의 앨범.

 

10여 년 전 독일 뒤셀도르프의 대학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전해지는 애롤과 루카스의 GB는, 각기 다른 분야의 재능을 지닌 두 사람이 완성한 창의적인 성과를 대변하고 있다. 능숙한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애롤과, 기계공이자 소프트웨어 디자이너이인 루카스는 클래식 작곡을 기반으로 프로덕션의 작법을 접목한 새로운 음악의 창작을 모색했고, 그 결과 현재의 GB가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Dilation (2015)를 시작으로 매번 인상적인 성과를 담은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으며, 피아노와 전자 음향을 결합한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징을 보여주면서도, 이와 같은 흐름에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는 역동적 움직임을 포착하며, 때로는 경쾌한 댄스 음악의 반응과 유사한 흐름을 연결하기도 하고, 감각적인 일렉트로니카의 사운드 특성을 수용해 입체적인 표현을 완한다.

 

얼핏 보면 다른 여타 모던 클래시컬 혹은 일렉트로닉 계열의 작업과 큰 차별점이 없어 보이지만, GB가 재현하는 모든 사운드가 그랜드 피아노에서 기원했다는 점은, 이들 듀오만의 유니크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애롤이 건반을 통해 연주하는 동안, 루카스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여러 장치를 피아노에 연결해 다른 특성의 독립된 사운드를 샘플링하고 큐레이팅하여 활용한다. 신서사이저 엔지니어의 경험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루카스의 장치는 지금까지 꾸준한 개선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다양한 사운드의 재현을 가능하게 했는데, 피아노의 몸체를 물리적으로 조작하여 시퀀싱 가능한 비트의 연출은 물론, 전자기장으로 직접적인 접촉 없이 현을 진동시키는 장치 등을 통해, 음악적으로 활용 가능한 다양한 음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GB의 작업들은 저마다의 각별함을 담고 있지만, 이번 녹음의 경우 더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리코딩 장소가 Köln Dom이라는 점이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성당에서 음악 공연과 녹음이 이루어진 최초의 사례로 알려졌으며, 리코딩은 가장 오래된 구조물 중 하나인 돔 동쪽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700주년 기념을 위한 일회성 공연으로 기획되었고, GB는 여기에서 연주할 1-2곡을 생각했지만, 준비를 하는 도중 풀타임 리코딩 계획을 추가하면서 현재의 앨범이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녹음 후에 별도로 진행한 공연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공개했고, 앨범 리코딩은 관람객이 없는 밤과 새벽에 이루어져, 공간의 특성은 물론 한적한 시간의 분위기까지 인상적으로 담겨 있다.

 

그 어떤 특성을 지닌 사운드도 단숨에 압도해 버리는 공간 그 자체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45미터 높이의 거대 구조물이 만들어 내는 웅장한 잔향은, 건축물 벽 내부에서 일어나는 초기 반사 외에도, 확산되고 지연되는 반영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이러한 음향 현상을 앨범의 타이틀로 정했을 만큼, 10초 이상 이어지는 긴 리버브의 존재는 앨범 전체를 압도하는 가장 중요한 효과를 구성한다. 앨범의 첫 트랙인 “Daybreak”의 도입에서부터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무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고, 마지막 곡 “Boy in the Storm”에서도 피아노와 일렉트로닉을 압도하는 공간의 존재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공간의 특성 속에서, GB는 개별 음향의 조율뿐만 아니라 각 사운드의 기능과 역할을 분명히 하며, 복합적인 구조의 레이어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배열을 보여준다. 공간의 다양한 울림 속에서 재현할 수밖에 없는 피아노의 특성에 알맞은 주법의 다양한 응용은 물론, 구성 속에 멜로디의 역할을 접목해 비장한 음악적 서사를 완성하는가 하면, 극적 요소의 개입과 반전을 통해 시네마틱 한 웅장함을 담아내기도 한다. 전자 장치로 재현한 사운드는 공간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물론, 때로는 녹음 장치에 직접 전달한 드라이한 음향과의 미묘한 대비를 연출하며, 곡의 입체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때로는 공간을 음향화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대성당이 만들어 내는 울림이 압도적이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눈으로 봐왔던 쾰른 돔의 형상을, 소리를 통해 감상한다는 쾌감 역시 웅장한 경험이다. 이번 작업은 애롤과 루카스의 협업일 뿐만 아니라, GB와 대성당의 장엄한 공동 작업인 샘이다. 모던 클래시컬,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미니멀리즘 등의 폭넓은 GB의 음악적 표현을 여유 있게 포용하는 건축물의 위대한 관용을 담은 앨범이다.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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