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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elge Lien Trio & Tore Brunborg - Funeral Dance (Ozella, 2023)

 

노르웨이 Helge Lien Trio와 색소폰 연주자 Tore Brunborg의 앨범.

 

이번 앨범은 20년 넘는 역사를 지닌 HLT의 통산 12번째 스튜디오 정규 녹음이며, 트리오와 토레의 협연을 다룬 첫 번째 공식 작업이기도 하다. 기존 트리오의 앨범에 비해 조금은 어두운 주제를 암시하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이는 2018년 세상을 떠난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Mikhail “Misha” Alperin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헬게는 앨범 소개글에서 미샤와의 인연에 대해, 10대 시절부터 스승이자 멘토였으며, “노래와 춤, 삶과 죽음”을 다룬 그의 음악이 자신에게 준 강렬한 영향을 고백하고 있다. 미샤의 사망 직후 헬게는 토레와의 협업을 제안받았고, 1주기에 맞춰 트리오와 색소폰의 첫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헬게와 토레는 공동 작곡에 기반한 앨범 녹음을 기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염병 사태로 지연되었던 녹음은, 중간에 맞물린 트리오의 재편과 더불어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2022년 말 첫 리코딩이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녹음에는 트리오의 전작에서 이미 새로운 고정 멤버로 정착한 드러머 Johannes Eick와 베이스 Knut Aalefjær가 함께하고 있다.

 

다양한 스케일의 노트를 활용하여 풍부한 음악적 배경을 연출하는 동시에 그 범위에 대한 엄격함을 통해 규칙과 제한을 설정함으로써 해당 곡이 지닌 밀도감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은 기존 트리오의 음악적 양식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트리오와 색소폰과의 안정적인 일체감을 강조하기 위해 공간을 조율한 흔적을 앨범 전체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데, 토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피아노와의 대위적 연관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다분히 전통적인 혹은 통상적인 접근에 기반한 앙상블을 선보이고 있다. 때문에 기존 트리오의 공간에 색소폰이 더해지는 단순한 구성이 아닌, 작곡과 편곡 과정에서 하나의 단일한 구성을 통해 음악적 재현이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지며, 이는 이번 작업만의 고유한 균형감과 앙상블의 완성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트리오 특유의 비장한 서정미와 토레 특유의 음유적 프레이즈는 안정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민속과 클래식 등의 모티브를 응용한 레퍼토리를 통해, 이들의 음악적 결속이 재현할 수 있는 풍부한 음악적 표현을 들려준다.

 

트리오와 토레의 음악이 과거 70년대 북유럽의 전통을 재현한 듯한 모습에서부터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한 다양한 양식을, 안정적이고 균일한 자신들만의 톤으로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고인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염두에 둔 이유도 있겠지만, 특히 몇몇 곡에서 색소폰과 피아노의 톤과 프레이즈는 과거 ECM이 발매한 일련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묘한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통상적인 발라드 스타일에서부터 실험적 구성을 지닌 표현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표현을 다루고 있어, 각각의 곡이 지닌 특유의 유형적 특징을 부각하고 있지만, 그 어느 트랙 하나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균일한 정서적 질감에 기반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들이 다루는 음악적 양식에 대한 유연한 접근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트리오가 지닌 자율성을 피아노에 집중하여 색소폰과 이루는 관계를 명료하게 부각하고, 베이스와 드럼의 능동성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엄밀하게 정의는 대신, 그 안에서의 다양한 인과적 표현을 개방하여, 앨범 전체의 균일한 질감과 통일성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기존 트리오의 음악적 감성을 반영하면서도 토레와의 공간적 합의가 이루는 독특한 표현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이들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앨범이다. 트리오가 예전에 Adam Bałdych와 함께 진행한 협업과는 다른 분위기를 포함하고 있어, 이점 또한 인상적이며, 협재의 공동 작업이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된다. 앨범이 다루고 있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삶의 양면을 깊이 있는 음악적 표현으로 완성한 이들의 회고적 성취는, 가장 고결한 의미에서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도달해 있는 듯하다.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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