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Tim Hecker의 앨범.
팀은 댄스 플로어의 DJ로 음악 활동을 처음 시작했고, Jetone이라는 활동명으로 첫 프로듀싱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팀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존 댄스 음악과는 다른 실험적인 양식의 일렉트로닉 작품을 선보이게 되고, 그의 작업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해당 분야의 주요한 뮤지션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된다. Ben Frost를 비롯한 유럽 유명 아티스트들은 물론 포스트-록그룹과의 협업 등 장르를 뛰어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폭넓은 음악 활동을 펼쳤으며, 영화와 미디는 물론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활발한 기여를 하고 있다. 데뷔 이후에도 오랜 기간 캐나다 정부 정치 분석가로 일했고, 사회 정책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사회 현실 문제에 대한 팀의 관심은 자신의 음악의 주요 모티브를 이루기도 하다.
팀의 음악은 앰비언트 혹은 일렉트로닉으로 분류하지만, 해당 장르에서 흔히 떠올리게 되는 통상적인 표현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명상적 분위기나 몰입적 묘사와도 무관하며 흥겨운 감각적 표현과도 거리가 멀다. 아날로그 혹은 어쿠스틱의 특성을 지닌 사운드를 전자 음향과 결합해 독특한 질감을 지닌 음악을 보여주지만,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성과도 큰 연관은 없다.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둔 작법이나 전통적인 모드에 기반한 곡을 선보이면서도, 고전적인 양식을 추상적으로 개념화한 듯한 구성은 물론, 즉흥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해체적 표현을 펼치는 등, 그의 음악 작업은 늘 미묘한 경계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완성을 이루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늘 앨범의 주제 의식과 일치하는 음악적 표현과 구성의 치밀함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앨범은 “허구의 긍정적 분위기로 포장한 기업의 폐해”에 대한 불안감과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경고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은 하나의 음을 일정한 패턴으로 타건하는 도입이다. 마치 모스 부호를 형상화한 듯한 이러한 단음의 반복적 패턴은 테마와도 같은 역할은 물론 전체 진행의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이어지는 복합적 구성의 진행을 일련의 재난 상황처럼 표현하는 극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음의 라인에 다른 사운드를 하나씩 점층하며 일련의 구조를 완성하고, 그 변화를 통해 곡의 플로우를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운드의 레이어링에 따라 밀도를 점층해 가며 빌드-업의 구조를 완성해 가는 형식이지만, 단순한 음악적인 고양보다는 메시지의 의도에 도달하기 위한 서술적 구성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된 구성은 복합적인 구조를 지닌 오케스트레이션과도 같은 총체적 표현에 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체적 양식을 통해 보다 미묘한 앙상블로 이어지기도 하는 등, 곡의 성격에 따른 다양한 진행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단음의 반복적 패턴은 복합적 구성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견인하는 중심점을 이루기도 하는데, Colin Stetson의 색소폰이 함께한 트랙에서는 극단적인 양식의 모달 어프로치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기도 하며, 미묘한 위상의 변화와 서스테인과 릴리즈의 배음만으로도 밀도를 채우며 하나의 테마를 완성하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피아노, 스트링, 브라스 등과 같은 연주 악기의 성격을 지닌 사운드를 활용하면서도 일렉트로닉의 특성을 더한 튜닝을 통해 팀 특유의 톤으로 조율하고 있으며, 각각의 소스들이 지닌 캐릭터를 비교적 명확히 한다. 강한 상징성을 지닌 폴리포닉 한 사운드나, 글라이딩 혹은 슬라이딩하는 독특한 움직임도 눈에 띄지만, 명료한 발성을 지닌 음의 활용이 주를 이루며, 필터나 공간계 이펙터를 통해 각각의 독특한 성격을 부각하기도 한다. 캐릭터의 지속성을 지닌 사운드는 복합적인 구성 안에서 서로 다양한 대비와 중첩을 이루며 독특한 텐션을 연출한다. 이는 팀의 이번 앨범에서 의식적인 내러티브를 완성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만으로도 재난 영화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는 요인이기도 하다.
경고의 의미는 명확히 하면서도 무책임한 희망을 담지 않은 것은 팀의 현명한 판단이다. 불안에 대한 무감각을 제도화하는 현실에 대해 지속적인 각성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음악의 역할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다양한 사운드가 지닌 상징적 요소를 이용해 온전한 음악적 형식으로 형상화한 모습은 무척 흥미롭고 놀랍다.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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