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영국 전자음악가 겸 프로듀서 James Clements의 앨범.
최근 몇 년 동안 우리의 일상을 바꾼 전 세계적인 규모의 감염병 사태는 음악가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모색하게 만든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양방향 공연이나 원격 통신을 이용한 음악 제작 등의 새로운 음악 환경은 물론, 질병 앞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무력감이나 봉쇄에 따른 고립감 등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음악을 제작하는가 하면, 제임스의 경우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장르적 모색을 시도 역시 존재한다. 제임스는 지금까지 나름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DnB를 기반으로 하는 일련의 장르적 특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지난 봉쇄와 단절은 댄스 플로어의 비트에서 벗어나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사운드와 텍스쳐의 중첩을 사고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제임스의 음악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최근 발매한 Original Soundtrack (2022)으로, 이전과는 다른 비트리스의 플로우에 피아노의 사운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음악적 접근을 선보인다. 일상과의 물리적 단절을 마치 기존 자신의 음악과의 거리두기를 묘사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단순한 앰비언트적인 공간 활용 외에도 피아노를 비롯한 기악적 사운드를 활용하여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징마저 수용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앨범은 이러한 전작의 후속 혹은 연작의 성격을 지닌다. 이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제임스가 선보였던 일련의 음악적 결실과는 다른 콘텍스트에서 작성된 결과의 일부라는 의미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접근을 자신의 새로운 음악적 언어로 구체화하기 위한 연이은 시도라고도할 수 있다. 대신 이번 작업에서는 전작에 비해 피아노의 레이어는 상대화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기존 작업과 새로운 접근 사이의 관계를 폭넓게 사고하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임스는 전작에서 부각되었던 피아노의 공간과 역할은 제한적인 반면, 다양한 사운드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곡에서는 여전히 미니멀한 피아노의 테마를 중심으로 레이어의 전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든 사운드의 후면에서 단순한 코드 키핑으로 고유의 텍스쳐 이미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드론, 사운드스케이프, 필드 리코딩 등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요소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상징적 요소로 피아노를 배열하고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다분히 앰비언트적인 특징을 우위에 두고 있다.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에 있어서도 전작에서의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묘사적 특징은 상대적으로 가려지는 대신, 앰비언트적인 공간감이 강조되어 전작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서적인 질감과 그 분위기가 부각되는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음악 속에 여전히 상존하는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묘사를 이어가는 듯한 연출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리버브를 이용해 묘사하는 차가운 공간감, 볼드 하게 조율된 톤 사운드, 로우-파이적인 텍스쳐를 활용하여, 미니멀한 테마와 라인의 반복을 통한 몰입은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전체 공간의 밀도보다는 개별 레이어 사이의 공간적 거리를 강조하는 듯한 믹싱은, 마치 독특한 양식의 다크 앰비언트를 연상하게 하는데,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러운 정서적 반영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가상악기를 이용해 완성된 음향이지만, 브라스나 스트링과 같은 어쿠스틱 악기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운드와 텍스쳐를 활용하여,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기도 한다. 때로는 복합적인 요소의 소스를 중첩하여 폴리포닉 한 사운드로 디자인된 드론을 연출하면서도, 라이너 한 플로우를 통해 정서의 다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제임스의 시도는 마치 자신의 기존 음악과 최근의 새로운 접근 사이에서 일련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며, 가끔은 전작의 음악적 콘텍스트를 기반으로 스펙트럼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새로운 접근이 제임스의 이후 음악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더라도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하기 힘든 인상적인 미적 완성도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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