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독일 출신 뮤지션들로 구성된 재즈 그룹 C.A.R.의 신보. 2010년대 초 Kenn Hartwig (b, effect)와 Johannes Klingebiel (ds)을 주축으로 처음 5인조로 결성되어 실험적인 연주를 선보였고, 이후 Leonhard Huhn (sax, elec), Christian Lorenzen (key, synth)가 합세한 쿼텟으로 재정비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번 앨범은 Beyond The Zero (2014)와 Interlude EP (2017)에 이어 발매된 것으로, 두 번째 풀타임 리코딩인 셈이다. 재즈가 지닌 개방적 성격은 내연의 언어를 발전시키는가 하면 장르적 경계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를 범주 내로 수용하는 등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재즈와 록의 융합은 이미 재즈의 고유 언어로 고착되어 새로운 확장을 시도한 지 오래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분화가 이루어진 경우를 수많은 예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C.A.R. 또한 이와 같은 진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이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표현의 조합은 다분히 독일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기타가 배제된 공간에 전자음악적 텍스트를 배열하고 몽환적인 사이키델릭을 연출하는 방식은 다분히 독일식 크라우트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신시사이저와 전자 효과로 구성되는 공간 안에서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개방하고 이를 전개할 수 있는 계기를 꾸준히 사고한다는 점에서 정통적인 재즈와는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색소폰의 공간과 역할이 이들의 음악에서 부수적인 재즈적 표현인지, 아니면 재즈의 확장적 모멘텀을 상징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대신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문법과 표현은 최근 재즈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융합의 시도와 연관해서 살펴볼 수 있는 많은 접점들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는 재즈라는 장르가 지닌 확장적 개방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렉트로닉, 록, 펑크, 재즈 등 그 무엇이 되었든 이들이 이루는 자연스러운 음악적 흐름이 놀라운 것은 분명하다.


20180715


벨기에 출신의 젊은 뮤지션들인 Lieze Van Herzeele (vn), Jonathan Baltussen (frhn), Gowaart Van Den Bossche (g) 등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주라 자이의 신보. 대학 시절 캠퍼스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만나 2000년대 말 베이스가 포함된 4인조 밴드로 결성되었으나 이후 바이올린, 프렌치 호른, 기타 편성의 트리오로 활동을 하게 된다. 초기에는 포스트-록적인 지향도 보여준 것으로 전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음반이나 기록 등을 통해 이들의 음악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들은 클래식, 포크, 재즈 등의 장르적 영역 내 어딘가에 위치한 곡을 연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앨범만을 놓고 봤을 때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에 어느 정도 동감할 수 있다. 실제로 트리오 편성의 내밀함이 구성하는 공간은 클래식의 실내악적 규범에 비교적 충실한 모습을 따르고 있으며,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어 라인을 구성하는 곡에서는 집시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한 듯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기타 역시 플라멩코와 정통적인 재즈의 규범 사이를 왕복하는 연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의 연주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복합적 성격은 개별 곡의 특징에 따라 다른 측면들이 부각되며 진행되고 있다. 즉, 다양함을 전제로 드러나는 복합성은 하나의 단일한 언어로 고유한 체계를 지녔다니 보다는 일종의 관심 혹은 취향을 반영한 듯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어찌 보면 장르적 유연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와 같은 태도는 이들 음악의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장르적 유연성이 음악적 수용과 확장성을 보여주는 이들의 장점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언급할 것은 트리오를 구성하는 개별 연주자들의 강한 캐릭터다. 누가 곡의 멜로디와 라인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곡의 성격은 확연히 달라지는데, 이 역시 앞서 언급한 장르적 유연성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조화는 이들만의 특권이다.


20180714


아이슬란드 첼로 연주자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와 작곡가 고 요한 요한손의 OST 앨범. Garth Davis의 영화 내용과 그것이 함의하는 논쟁적 쟁점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만 영상과 음악의 조화로운 연관을 보여줬다는 점은 기억에 남는다. 올 초, 갑작스럽게 우리와 이별한 요한손이 남긴 유작 중 하나라는 점 역시 이 앨범을 대하는 태도를 더욱 엄숙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구드나도티르와 요한손의 음악적 인연의 시작은 200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여러 편의 공동 작업 외에도 다수의 개별 음반에서도 협업을 이어왔던 돈독함을 유지했다. 물론 여러 편의 영화 음악에서도 공동으로 혹은 협력자로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요한손은 Sicario (2015)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의 사후에 작업이 이루어진 후속 편 Sicario 2: Day Of The Soldado (2018)에서는 구드나도티르가 고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완성할 만큼 둘 사이의 음악적 유대는 매우 긴밀하다. 이번 앨범은 OST라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음반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영화에서는 화면 속 시퀀스와 미장센을 완성하는 감정의 내레이션처럼 음악이 작용하지만, 앨범 안에서는 개별 곡들이 지닌 표제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그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를 이루는 완성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흔히들 OST에서 자주 보게 되는 메인 테마와 몇 개의 타이틀이 변주를 이루며 나열되는 방식과 달리, 이 앨범에 수록된 개별 곡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 곡의 성격을 집약하고 있는 것은 제목이며, 때로는 강한 메타포를 내포한 타이틀이 음악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스포일러가 되기도 한다. 앨범 속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역할은 단순한 연주자와 작곡가라는 기능적 관계가 아니며 각자의 포지션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긴밀한 연관을 지닌 음악적 협업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미완으로 남겨진 요한손의 유작들이 오랜 동료였던 구드나도티르의 손끝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20180713



영국의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벤 채트윈의 신보. 2000년대 말부터 활동을 시작해 몇 년 전까지 Talvihorros라는 이름으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The Sleeper Awakes (2015)를 계기로 자신의 본명으로 앨범을 발표했고, 이번 앨범은 Heat & Entropy (2016)에 이은 작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기존의 작업과는 달리 채트윈은 자신의 본명으로 활동하면서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두 가지 언어 사이의 관계 자체가 규범적이거나 일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그 자체로 모호하고 불명확하며, 때문에 다면성을 지닌 긴장의 축을 동반하게 된다. 많은 뮤지션의 경우 자신의 음악적 견해에 따라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그 긴장을 해소하거나 감추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면, 채트윈의 경우 균열과 대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불안과 긴장의 대비에 따른 볼드한 분위기의 연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느낌은 의도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편에서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두 가지 언어의 대칭적 활용을 통해 드러나는 관계의 모호함은 다른 한편에서는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이의 다면적인 접점들을 개방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지점에서 채트윈만의 고유한 레토릭이 표출될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그의 음악이 단순히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적 수사까지 포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밸런스보다는 텐션과 그 효과의 다면성에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관악과 현악을 이용해 연출 가능한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는데, 악기 고유의 텍스처를 은폐하여 드론 효과와 같은 에소테릭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연출하는가 하면,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의 관계를 무효 혹은 역전시키는 실험적인 발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대 작곡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분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좋은 텍스트 중 하나다.


20180712


미국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트리스탄 에커슨의 신보. 작년에 선보인 Disarm (2017)을 비롯한 일련의 1631 Recordings 레이블 발매작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비교적 명료하게 정의했던 이력에 비춰본다면 이번 앨범은 그 연장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번 앨범 역시 솔로 공간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업과 연관성을 지니며, 동시에 이번 음반만의 고유한 음악적 색깔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앨범에서 에커슨은 음향 효과나 필드 리코딩 등의 활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한 상태에서 자신의 피아노 연주 그 자체에 의해 구성되는 음악적 공간의 부피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에커슨의 음악적 의지는 작곡과 이를 재현하는 연주에 의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매우 진솔한 구조에 의지해 이번 앨범을 녹음하고 있다. 물론 이에 따른 일장과 일단의 단면도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이번 앨범에서는 '변주'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지만 클래식적인 의미에서의 바리에이션과는 차이가 있으며, 재즈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임프로바이제이션과도 거리가 있다. 사실 에커슨은 뛰어난 기악적 능력을 발산하며 연주를 진행하는 스타일의 연주자는 아니다. 대신 자신의 음악적 의지가 반영된 테마를 확장하고 하나의 시퀀스로 발전시키는 상상력은 대중적 정서와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이 넓기 때문에 그의 간결한 표현은 진솔하게 느껴지고 이 역시 에커슨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앨범 전체에서 사운드가 들려주는 질감 자체는 균일하고 일관된 느낌이지만 개별 곡들이 지닌 정서는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어 다분히 감정의 '변이'를 관찰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꿈'이라는 메타포가 지닌 모호함에 의지에 이와 같은 다양성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한된 공간 내에서의 다면적인 의지의 표출은 자칫 지나친 감정의 기복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과 닮은꼴이다.


20180711


노르웨이 출신 기타리스트 Thomas T. Dahl, 베이스 연주자 Mats Eilertsen, 그리고 핀란드 출신 드러머 Olavi Louhivuori로 구성된 재즈-록 그룹 스카이다이브 트리오의 신보. 북유럽 재즈 신을 대표하는 최고의 뮤지션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SDT의 구성은 화려하기만 하다. 각자 자신의 밴드는 물론 Alexi Tuomarila Trio, Slow Motion Quintet, Tord Gustavsen Ensemble & Quartet, Oddarrang, Sun Trio, Tomasz Stańko Quintet 등 오늘날 유럽 재즈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신구의 다양한 조합에서 이들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마츠의 Radio Yonder (2009)에서 쿼텟의 포맷으로 처음 함께 녹음했고 이후 SkyDive (2011)라는 트리오 앨범을 발표한다. 이번 앨범은 SDT의 타이틀로 처음 발매된 Sun Moee (2015)에 이은 두 번째 SDT 녹음이지만 그 중간에 ECM에서 발표한 마츠의 Rubicon (2016)까지 포함하면 여러 작업에 걸쳐 이들 세 명은 하나의 호흡 속에서 자주 연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앨범은 재즈-록에 기반을 둔 기본적인 스텐스에서는 전작의 SDT 앨범들과 동일하지만, 그 표현과 앨범 전체의 질감에서는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 작업에 비해 개별 공간에서의 자율적 표현들이 개방되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연주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다소 헤비해진 사운드의 텍스처는 확실히 예전의 경쾌함과는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자율적 표현 속에서도 서로를 견인할 수 있는 내적 구심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경륜이 바탕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기존의 정합적인 구성에서 연출되는 스트레이트한 분위기는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대칭적인 공간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던 비의적인 몽환과 긴장은 더욱 강조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의 이동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공기의 밀도까지 응집하는 듯한 느낌이 좋다.


20180710


Losci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겸 일렉트로닉 뮤지션 Scott Morgan과 미국의 첼로 연주자 Mark Bridges의 듀엣 프로젝트 하이 플레인즈의 신보. 이번 앨범은 Cinderland (2017)에 이은 작업이지만 전작을 위한 투어 배포용 테이프로 제작되었고 웹 릴리즈 형식으로 공개된 일종의 비공식 발매작이다. 사실상 전작의 부록 성격을 띠고 있지만 PH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는 청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다. 2015년 모건의 녹음에 브리지스가 참여하면서 처음 함께 작업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듀오를 위한 준비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음악은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음악이 지닌 여러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전자 효과음이 발산하는 앰비언스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현악기의 사운드를 배열함으로써 자신들이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과 정서를 현대 클래식의 언어를 차용해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필드 리코딩을 활용하여 묘사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한편, 비의적이면서도 심원한 표현에 현실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유사한 장르적 경향성을 지닌 다른 뮤지션들과의 차이는 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요소들에 어떤 위상을 부여하고 어떻게 서로의 연관성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소소하게는 사운드의 텍스처가 달라지고 궁극적으로는 진행 과정에서 제시되는 테마의 콘텍스트가 달라진다. 특히 PH와 같이 특정 대상에 대한 자신들의 정서와 감정의 묘사가 일련의 시퀀스를 형성하며 진행의 형식을 완성하는 음악에서는 개별 악기와 요소의 위상과 관계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적인 구성을 이어가며 내면의 정서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PH의 음악은 마치 모건과 브리지스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전자 악기와 첼로는 같은 문자열을 배열하며 서로를 보완하고 부연하는 회화적인 선형을 이어간다. 불확실한 감정의 표류를 서로의 연주에 기대어 구체화한 진지한 협업이다. 음악 자체가 과정 전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0180708


프랑스의 색소폰 연주자 David Haudrechy가 이끄는 빅밴드 이니시아티브 아시의 신보. 대규모 편성의 연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IH의 연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밴드의 리더인 다비드가 피아니스트 Grégoire Aguilar와 함께 결성한 듀엣 Endless의 Lost Lake (2017)와, IH의 멤버인 트럼펫 연주자 Nicolas Gardel이 이끄는 The Headbangers의 The Iron Age (2018) 때문이었다. 이들을 포함 12~3명에 이르는 연주자들 외에도 여러 명의 게스트들이 참여해 녹음을 진행하고 있는데, 모두 다 거명할 수는 없지만 최근 유럽 재즈 씬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준 젊은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앨범은 Deus Ex Machina (2014)와 Dark Wave (2015)에 이은 세 번째 녹음으로, 기존 작업에서 보여준 혁신적 사운드와 장르 확장적 표현을 재현하고 있다. 빅밴드라는 관점에서 IH의 가장 큰 특징은 흔히들 컨템퍼러리라고 통칭하는 경향적 유형성을 고전적인 대규모 편성에 적용해 새로운 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이들은 쿼텟이나 퀸텟 등의 편성에서 보여준 공간 개념을 대규모 포맷으로 확장하고 있어, 고전음악의 앙상블 규범을 차용해 재즈의 표현에서 진화를 시도했던 기존의 일부 방식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준다. 여러 뮤지션들이 합종연횡을 이어가면서 스스로 다양한 공간 구성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긴장과 이완을 펼치는데, 그 모습은 무척 유연하면서도 밀도 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편성의 포맷으로 재즈의 확장적 경계에서 마주하는 주변 장르의 음악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시도하고 있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전자음악, 록, 클래식 등의 요소들이 IH의 연주 속에서 폭발적인 에너지의 응축을 완성하고 있다. 이번 앨범은 그리그와 무소르그스키를 모델링하고 있지만 록 심포니, 재즈 오케스트레이션, 현대 앙상블 등을 연상시키는 다면적인 IH의 표현 속으로 원곡은 분화와 해체를 거치게 된다. 세련된 집단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20180707


오스트리아 출신 재즈 기타리스트 아힘 커크마이어의 트리오 신보. 1990년대 중반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자신의 밴드는 물론 세션으로도 활동했지만 실제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뮤지션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보컬리스트 Ingrid Moser와 공동으로 Dee Dolen라는 밴드의 리더로 활동하며 재즈와 월드 퓨전 스타일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였다고 전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앨범이 처음 접하는 아힘의 음악이기도 하다. 트리오 포맷으로 녹음된 이번 앨범에는 Ali Angerer (tba), Andjelko Stupar (ds)가 참여한 독특한 편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통상적인 베이스의 역할을 튜바가 부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흔히들 컨템포러리 계열의 퓨전 스타일이라고 통칭하는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간의 구성이나 진행 형식에서도 비교적 정통적인 스텐스에 기반을 두고 있어, 독특한 편성에도 불구하고 무척 친숙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튜바는 낮은 음역대의 묵직한 블로잉으로 코드 키핑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어 베이스의 부제에 따른 공백을 전혀 체감할 수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솔로 공간에서 호른 악기 특유의 적극적인 라인을 전개함으로써 기존 트리오와는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아힘의 기타 톤의 경우 때로는 스트레이트하게 또 경우에 따라 블루지한 표현을 보여주며 개별 곡의 분위기에 맞는 다양한 뉘앙스를 전해주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우리가 평소 재즈에서 익숙하게 들어왔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오디너리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일상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어서, 독특한 편성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기대했던 청자라면 조금은 맥 빠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강박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균형과 조화에 방점을 두고 안정적인 일상적 표현을 완성하고 있다는 점은 귀 기울일 대목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듣는 입장에서는 즐겁고 편할 따름이다.


20180706


영국의 재즈-록 그룹 다이너소어의 신보. Together, As One (2016)을 통해 보여줬던 이들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2년 만에 발매되는 두 번째 스튜디오 녹음이다. 이번 앨범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Laura Jurd (th, synth), Elliot Galvin (synth), Conor Chaplin (b), Corrie Dick (ds) 등이 참여하고 있다. 쿼텟에 참여하고 있는 개별 멤버들의 면모도 놀랍지만, 다이너소어라는 그룹으로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적 합의를 생각하면 흔히들 말하는 슈퍼세션이라는 찬사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데뷔 앨범에서 보여준 음악적 창의는 이와 같은 편성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즈의 레토릭을 제시하기도 했다. 흔히들 6말7초의 감성에 머물렀던 기존 재즈-록의 표현에 대해 80년대의 신스팝적인 어법과 일렉트로닉의 감각적 표현을 개방하고 여기에 켈트의 민속적 요소까지 결합하여 자신들만의 유니크한 면모를 보이게 된다. 2년 만에 발매된 이번 앨범에서는 데뷔작에서 보여줬던 창의적인 표현들을 보다 과감하게 확장하고 있다. 한층 볼드해진 리듬 페턴과 사운드로 무게 중심을 한층 낮추고 신시사이저의 의도적인 과장을 통해 트럼펫과의 더욱 극적인 대비를 유도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서는 재즈의 어법을 따르고 있지만 그 구성 형식에서는 전통적인 공간 개념 대신 합주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만큼 긴밀한 내적 정합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전적인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기까지 한 이러한 진행은 개별 연주자들의 자율적 의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밀도감 있는 다이내믹과 재치 있는 기발함을 유발하여, 때로는 긴박하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한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허용하고 있다. 트럼펫 연주자인 로라의 작곡이 어느 부분까지 의도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극적인 긴장의 팽창과 이완을 완벽하게 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함께 참여한 뮤지션들의 개인역량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2018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