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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gyt - We Know We're Right (Rohs!, 2023)

 

Agyt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프랑스 앰비언트 뮤지션 Tom Devianne의 앨범.

 

Rohs! 레이블 산하 Lontano Series의 카탈로그로 발매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앨범은 앰비언트의 시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음악가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뮤지션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어떤 자료도 없으며, 레이블의 앨범 소개 페이지에서는 Hélder Câmara 대주교의 “폭력의 소용돌이” 중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번 작업이 담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개괄적인 암시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혁명의 나라’ 답게 저항이 일상화된 프랑스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사안으로 수많은 시위가 발생하며 때로는 물리력이 충돌하는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오래전에 에우데르는 지배를 합법화하고 영속화하는 제도적인 폭력 및 이에 동조하는 억압적 폭력, 그리고 이에 맞서는 혁명적 폭력으로 구분했다. 앨범은 지난 프랑스 연금 개혁 반대 투쟁을 모티브로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히면서 대주교의 폭력에 대한 구분과 정의를 인용하고 있으며, 각 곡의 제목들 또한 “고용의 파도", “상처받지 않은 자들이 우리를 떠났다”, “한 사람의 부상은 모두의 부상이다” 등과 같이, 다분히 우리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구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앨범의 타이틀은 Nirvana의 “You Know You're Right”를 차용하고 있다.

 

앨범의 소개는 물론 타이틀과 각 곡의 제목들이 지닌 직설적인 저항의 옹호 혹은 선동적 구호에도 불구하고, 음악 자체는 직접적인 아지테이션이나 프로파간다를 표면화하는 대신, 그 상징성을 내면화하여 굵고 깊이 있는 긴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지트’라는 발음으로 읽게 되는 활동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음악은 마치 저항의 정신적 은신처 혹은 문화적 본진의 기능과 역할을 자임하는 듯하며, 표현 또한 레지스탕스의 격조와 품위에 알맞은 무게와 비중을 담아내고 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은 톰 자신이 직접 촬영한 커버의 사진이 아닐까 싶다. 희생의 피를 상징하는 보라색 바탕에 굵고 거친 그레인이 가득한 모노톤의 사진은 매우 압축적이다. 특히 사진 속 그레인은 앨범 전체의 고유한 텍스쳐를 지배하는 노이즈 플로우와 무척 흡사하며, 실제로 개별 곡에서 노이즈 웨이브는 중요한 음악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노이즈 오실레이팅을 통한 플로우의 구성뿐만 아니라, LFO를 통한 필터 조작의 중요한 변수로도 활용하고 있으며, 때로는 로우 프리퀀시에서 간헐적으로 개입하는 랜덤한 패턴의 노이즈를 통한 변화는 곡의 긴장을 유도하는 기능적인 역할과 함께 나름의 상징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강한 텍스쳐와 세추레이션을 지고 있으며, 때로는 소스에 하이-패스 필터를 걸어 독특한 사운드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로우-파이적인 분위기나 지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 같이 연출한 분위기 자체가 음악적 의지를 담아내는 듯하며, 암중모색의 저항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프리퀀시나 레조넌스의 극단적 변화를 제한하여, 기본적인 구성의 흐름을 밀도 있게 지속하고 있어, 이 또한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흐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악을 통해 확고한 저항의 신념을 표출하고 있지만, 그 방식이 기존 자신들의 전통과도 같았던 68년식의 사고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무척 신선하다. 60년대생 드러머 고 Mimi Parker에 대한 헌정곡을 첫 트랙에 담은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저항의 음악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완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 상징적인 곡의 배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치적인 내용을 떠나, 이 모든 것을 앰비언트의 온전한 음악적 형식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앨범이기도 하다.

 

 

2023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