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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lva Noto - This Stolen Country of Mine (NOTON, 2023)

 

Alva Noto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독일 전자음악가 Carsten Nicolai의 OST 앨범.

 

1965년 분단 독일 동쪽에서 태어난 카르스텐은 정치 및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음악과 미술의 과도기적 순간을 경험하며 이를 음향과 시각적 기호로 환원해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관을 완성한다. 유명 뮤지션들과의 여러 협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고인이 된 Ryuichi Sakamoto와의 놀라운 공동 작업을 포함하기도 한다. 과학적 현상을 시각과 청각적 인식을 통해 표현한 작업을 비롯해, 유명 박물관 및 미술관의 전시를 위한 음악은 물론, 영화를 위한 작곡에서도 남다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앨범은 Marc Wiese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This Stolen Country of Mine (2022)을 위한 음악 작업을 수록하고 있다. 영화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얼마 전까지 남미의 부국으로 알려진 에콰도르의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가 하락 및 달러 강세로 인한 수출 부진과 대지진의 여파로 재정 위기에 빠지게 된 에콰도르는, 일대일로를 명목으로 자원 식민화를 노리는 중국의 자본을 받아들이며 더 심각한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영화는 자원 수탈에 저항하는 원주민 지도자와, 정부를 앞세운 중국의 식민화 음모를 파하치는 기자의 싸움을 따라가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여러 영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번 영화 음악은 German Documentary Film Music Award의 수상작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음악의 역할이 탁월했던 점은, 자본과 정부라는 거대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각 개인에게 소리를 통해 힘을 더해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거대 세력에 맞서는 영웅적인 과장을 더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각 인물의 힘겨움과 갈등은 물론, 그 주변을 둘러싼 일상적 절망과 불안한 희망의 교차를, 무척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그 어떤 과장이나 작가의 주관적 개입이 없는 음악은 영화 속 장면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마치 시각적 정보를 청각적 기호로 고스란히 옮겨왔다는 느낌을 줄 만큼, 음악은 영상 속에서 두드러지지도 않으면서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어, 모든 순간 자막보다 더 정교한 정보를 전달하는 듯하다. 때로는 음악 스스로 멈춰 서며 침묵을 통해 발언하는가 하면, 소리를 통해 인물의 내면과 상황에 공감하는 예술가적 완숙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영화 속 음악으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도 무척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알바 특유의 미니멀한 진행과 구성이 큰 역할을 한다. 기본 음 혹은 코트 하나를 바탕으로 이어지는 정적인 라인 위로 서서히 증감을 이루는 레이어의 변화만으로 음악적 플로우를 완성하는 응집력을 보여준다. 복합적인 중첩으로 공간을 채우는 대신, 각각의 사운드가 서로 대비와 대면을 이루는 과정과 모습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알바 고유의 내밀함도 담고 있다. 그만큼 영화적 상황을 반영한 개별 사운드 하나하나가 지닌 고유한 상징성이 강한데, 하나의 곡에서는 파라미터값의 변화를 극히 제한하여 비교적 균일한 캐릭터를 지속하기도 하며, 노이즈의 오실레이팅조차 하나의 독립된 변수로 가공하여 활용하는 세밀함을 보여준다. 서로 유사한 엔벌로프의 특징을 지닌 소스라고 해도 LFO의 움직임에 따라 보이는 미세한 떨림을 통해 다른 캐릭터를 완성하며, 곡에 따라 다른 방식의 적용을 보여주고 있어, 유사한 특징을 지닌 음향일지라도 각기 다른 방식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여, 영상 속 상황을 추적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현악, 브라스, 키, 퍼커션 등의 연주 악기의 특성을 반영한 사운드에서부터 패드나 드론과 같은 전자 음향 고유의 특징에 이르는 다양한 소리들을, 각 트랙의 성격에 맞게 개별적으로 조율하고 배열하여 미니멀한 구성의 앙상블을 완성한다. 때문에 각 곡은 그 조합에 때라 각기 다른 저마다의 상황에 따른 특징을 구체화하는가 하면, 때로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일련의 연관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서로 유사한 엔벌로프의 특징을 지닌 사운드를 중첩해 독특한 배음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폴리포닉한 각 레이어의 명료함에 집중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사운드의 점층은 공간의 확장보다는 밀도의 중첩에 집중하는 모습이라, 미니멀한 구성을 지닌 사운드로 이루어진 간결한 흐름 속에서도 서서히 쌓이는 에너지의 고요한 운동을 느낄 수 있으며, 이 과정은 듣는 이에게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곡 자체의 흐름과 구성은 간결하지만, 나름 기승전결과 같은 형식미를 갖추고 있으며, 각각의 음악적 모티브를 이루는 주요 효과나 사운드의 조합을 관찰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과정이다.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를 소리로 담아내면서도, 음악이 갖춰야 할 미적 완결성도 뛰어난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다. 모던 클래시컬, 드론, 글리치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의 중첩을 이루지만, 그 모든 흐름이 온전히 음악 그 자체로 들린다는 점에서, 알바의 음악은 하나의 언어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OST로서도 뛰어나고 독립된 음악 작업으로서도 완벽한 앨범이다.

 

 

202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