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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nders Jormin & Lena Willemark - Pasado en Claro (ECM, 2023)

 

스웨덴 베이스 Anders Jormin과 바이올린/비올라 및 보컬 Lena Willemark가 함께하는 쿼텟 앨범.

 

안드레스 하면 Charles Lloyd, Tomasz Stanko, Bobo Stenson 등과 같은 뮤지션들과의 오랜 음악적 동료관계를 유지하며 선보였던 일련의 스타일을 연상하게 되고, 이는 어쩌면 그의 음악적 다면성과는 상반을 이루는 일종의 선입견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안드레스는 재즈의 언어와 표현에 충실한 임프로바이저이면서, 동시에 클래식이나 민속음악과 관련한 깊이 있는 다면성을 내포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특히 민속적 특징과 관련한 그의 음악 표현이 복합적으로 심도 있게 드러난 좋은 예가 레나와 함께한 일련의 작업이 아닐까 싶은데, 이번 작업 역시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결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안드레스와 레나의 첫 만남은 In Winds, In Light (2004)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해당 앨범은 마치 실내악적인 구성 속에서 보컬을 전면에 배치하여, 북유럽적인 시각 속에서 클래식과 민속적 특징을 실험적인 양식으로 융합한 독특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이후 선보인, 일본 전통 현악기 고토 연주자 Karin Nakagawa와 트리오로 녹음한 Trees of Light (2015)는 민속음악을 소재로 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게 된다. 형식적으로는 서양 음악의 구조에 동양적 텍스쳐를 더한 모습이지만, 그 내용은 폭넓은 문화적 다면성을 담아내는 파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 앨범은 이전 트리오 작업에, Bobo Stenson Trio에서 안드레스와 오랜 호흡을 맞춰온 드럼 Jon Fält가 참여해 쿼텟 형식으로 녹음을 진행하고 있어, 전작의 확장이라는 느낌을 강화한다. 이전 녹음이 현악기들의 복합적인 텍스쳐와 보컬을 중심으로, 비교적 균일한 공간적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이번 작업에서 욘의 드럼과 퍼커션은 보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를 완성함으로써, 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입체적인 형상을 전달하고 있다. 카린은 전통적인 13 혹은 17현이 아닌 25현의 고토를 사용하여, 악기가 지닌 여러 표현을 풍부하게 펼침으로써, 전체 연주의 다면성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작에서도 드러난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번 작업 또한 단순히 서양과 동양의 교집합을 확장하는 방식이 아닌, 여러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다양하게 병치하는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북유럽, 일본은 물론 남미와 이탈리아의 언어와 문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일련의 음악적 합을 이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각 악기는 어느 특정한 장르적 혹은 문화적 표현에 자신을 제한하지 않는 다면성을 드러냄으로써, 음악적 획일성을 회피하는 노련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예로 카린의 연주는 일본 전통의 이미지를 묘사하는가 하면, 때로는 현대 하프의 투명한 배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혀 의외의 민속적 양식을 연상하게 하는 다면성을 유연하게 드러낸다. 모든 악기와 발성이 각자의 소리를 강조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는데, 마치 고립된 자신의 공간 속에서 서로를 향해 존재를 부각하면서, 집단적 조우를 이루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그만큼 각 공간의 개성이 강하고, 그 표현 또한 자기주장을 명료하게 담고 있어, 앙상블 그 자체가 음악적 다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모습은 무척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각각의 개성이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텐션을 각자의 직관에 의지해 해소하는 모습은, 단순히 자율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지점을 포함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와 같은 과정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상하는 것이, 그 의도에 충실한 감상 방법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각각의 뮤지션이 지닌 독특한 개성과 더불어, 이들이 지닌 복합성과 다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 조합에서는 섬세한 큐레이션이 개입했음은 어느 곡을 들어도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 나름의 정교함을 포함하기도 한다. 각자의 문화적 호기심이 어우러져 독특한 집단적 합의를 이루고 있어,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앨범이다.

 

 

20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