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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nthony Wilson - Collodion (Colorfield, 2023)

 

미국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Anthony Wilson의 앨범.

 

1968년생인 앤서니는,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 Gerald Wilson의 아들로도 유명했지만, 현재 재즈는 물론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펼치고 있다.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독창적인 솔로이스트이며 여러 거장들과의 협업 속에서 풍부한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던 연주자이기도 하며, 작곡과 편곡은 물론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창의적인 성과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은 앤서니의 경력에서도 무척 독특한 지위를 보여주는 녹음이 아닐까 싶은데, 주로 젊은 뮤지션들의 새로운 창의와 실험적인 도전을 격려하는 Colorfield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선보인다는 점뿐만 아니라, 실제 그 내용에서도 레이블의 지향에 부합하는 음악적 도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는 기존 앤서니의 작업에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면서도, 이번 앨범만의 고유한 작업 방식과 접근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의 창의적 이면의 새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특히 보컬 곡을 주로 들려줬던 최근의 작업과 비교하면, 기존 기악 중심의 연주로 다시 회기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내용으로 채워가는 모습은 무척 흥미롭다. 즉흥적인 모티브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구성 자체가 마치 하나의 즉흥적 감각을 기반으로 사운드의 레이어를 구축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신선하며, 장르적인 분위기 또한 하나의 정형화된 양식에서 벗어난 다면적인 자율성을 실현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기타 외에도 여러 톤 사운드의 피아노는 물론 다양한 건반들을 연주하고 있으며, 모듈러 신서사이저 특유의 질감을 살린 레이어는 물론, 고전적인 전자 악기의 풍부한 배음도 활용하는 등, 소리 그 자체를 통해 음악적인 도전은 물론 장르적인 다면성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악기는 앤서니 자신이 직접 연주했고, 개별 트랙에서는 드럼/퍼커션 Mark Guiliana, 베이스 Anna Butterss, 색소폰 Daniel Rotem, 트럼펫 Julien Knowles, 트롬본 Jonah Levine, 현악 Rob Moose 등이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 앨범 전체는 각 공간이 서로에 대해 취하는 느슨한 거리감과, 이를 통해 연출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인상적이다. 여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와 같은 거리감은 미묘한 긴장을 동반하고 있어, 무척 생경한 공간감을 연출하는데, 양가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이와 같은 분위기를 고스란히 음악에 담아내고 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은, 실재와 환상의 경계 속에서 배회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구분조차 모호하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생각해 보면, 이는 무척 절묘한 공간적 배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운드 튜닝 또한 다분히 러프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각자의 공간 및 장르적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상호 간의 대비와 대질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앙상블이 이루는 느슨한 거리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연출하고 있다. 개별 악기에 적용된 리버브나 딜레이와 같은 공간계 효과들은 각자의 음향적 특성을 부각하는가 하면, 서로의 공간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개별적 고립감이 하나의 통합적인 공간 안에서 서로 대면하며 일련의 앙상블을 완성하는데, 이 또한 규범화된 준칙이나 통상적인 규칙에 의존하지 않는, 상당히 유연한 접근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느슨한 거리감 속에서도 상호 간의 긴밀함을 바탕으로, 기민하게 변화하는 프레이즈와 공간 구성은 음악의 극적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각 공간이 지닌 각자의 기악적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흐름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으며, 곡이 지닌 절묘한 극적 분위기는 더욱 선명하게 전해진다. 재즈, 록,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등 고유한 장르적 상징성을 지닌 사운드가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절묘하게 서로의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이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3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