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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nton Batagov - Quietude and Joy: As Envisioned by Russian Painters (FancyMusic, 2021)

러시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Anton Batagov의 앨범. 안톤은 차이콥스키 국제 경연 수상자이면서 바흐에서 글라스에 이르는 폭넓은 연주 레퍼토리를 보유한 피아니스트다. 그가 선보인 바흐의 푸가는 굴드 이후 최고의 연주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을 비롯해 20세기 여러 현대 음악 작곡가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평단의 찬사를 끌어내기도 했다. 1990년대 말 이후 안톤은 10년 이상 공연 활동을 중단하고 오직 작곡과 스튜디오 녹음에 몰두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원곡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올 한 해만 하더라도 자신의 초기 작곡을 재해석한 Early Piano Works Revisited (2021), 푸시킨과 하름스 등 러시아 시인들을 모티브로 하는 Optical Illusion (2021) 등을 발표하며 작년에 이어 왕성한 창작을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11월 12부터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Manege 컨벤션센터의 Quietude and Joy 프로젝트를 위해 의뢰받은 작곡으로, 내년 1월 말까지 이어지는 전시회 동안 공연도 함께 진행된다고 한다. 전시회는 18세기에서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화가들의 목가적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통해, 역사적으로는 비극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향의 자애로움이 가득했던 세계를 회상한다고 한다. 격변의 시대에 역사에 편입되지 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곡가는 자신의 언어로 '고요와 환희'를 쓰기 시작했고, 이는 어쩌면 전 지구적인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불안과 분노를 대신할 정서적 위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수록된 7개의 곡은 화가나 그림 제목 등의 구체적 대상을 배제한 채 "Before the Dawn", "Landscape", "Portrait", "Oil on Canvas" 등과 같이 추상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제목들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전시된 100여 명 이상 작가들의 작품들을 요약하고 개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안톤 자신의 원고에 반영된 미니멀한 언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곡들은 고전주의에서부터 현대 작곡에 이르는 다양한 양식들을 수용하고 있어 마치 전시에 초대된 작품들의 연대기를 반영하는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균일한 톤과 정서적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고요와 환희'라는 테마의 의도에 부합하는 목적성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회는 역사(혹은 정치)를 배제한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안톤은 "오늘과 같은 치열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조화롭고 평온한 음악을 들으려는 노력"으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함으로써 '고요와 환희'라는 테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때문에 '고요와 환희' 이면에 '우울과 슬픔'이 공존하는 듯한 묘한 연주는 안톤이 자신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앨범에 더 풍부한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역설적인 방식으로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임을 안톤이 보여주는 듯하다.

 

2021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