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Anushka Chkheidze - Theatre Extracts (The state51 Conspiracy, 2021)

그루지아 전자음악가 Anushka Chkheidze의 앨범. 아누쉬카가 작년 봄 세상에 발표한 Halfie (2020)나 감염병으로 인한 봉쇄를 거치면서 그 소회를 기록한 Move 20-21 (2021)을 보면 20세 초의 젊은 여성 뮤지션이 세상을 관찰하고 이를 음악으로 기록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관조적이면서도 때로는 냉소적이며 감각적인 자극 이면에 섬세한 감성을 숨긴 신중함을 느끼게 된다. 앞선 두 장의 앨범은 각기 다른 음악적 표현을 활용하고 있지만 아누쉬카가 지닌 기록의 섬세함과 신중함은 그녀만의 독특한 정서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감춰왔던 아누쉬카의 이러한 특징을 오히려 전면에 드러내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감각의 이면에 숨겨진 우울함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동요하면서도 잔잔하게 움직였던 감정의 흐름을 전면에 부각하면서 고유한 음악적 전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관찰자적인 태도를 보였던 지난 작업에서의 제목들과는 달리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타이틀들은 추상적이면서도 나름의 명료한 관념적 세계관을 암축하고 있어 보인다. 이전 작업과 비교했을 때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단순해진 사운드의 구성이 눈에 띄지만, 폴리포닉 한 특징을 지닌 음향 그 자체는 LFO나 엔벨로프 혹은 펑션들의 조작에 의해 끊임없이 동요하고 있으며, 잔잔하면서도 지속적인 진화를 이어간다. 때문에 개별 곡들은 긴 호흡의 과정을 거친 점진적인 진행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다분히 명상적인 분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휴식으로 이끄는 메디테이션과는 전혀 다른 효과를 보여주는데, 오히려 반대로 생생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현대 무용의 춤 동작이나 반복적이면서도 관습적인 일련의 자연스러운 행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음악을 듣기 전에는 앨범 타이틀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막상 마지막 트렉이 끝나고 나면 그 의도를 충분히 반영한 작업이라는 점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무대를 염두에 둔 작업이면서도 자기 성찰적인 내밀함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202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