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ryphos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미국 전자음악가 Robert Conrad Kozletsky의 앨범.
로버트는 2010년대 초 Psychomanteum라는 이름의 듀오 프로젝트를 통해 데뷔했고, 이후 2015년 솔로로 독립하여 아프로크리포스라는 이름으로 개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뮤지션이다. Cyclic Law와 Cryo Chamber을 통해 개인 작업을 발표하는 것만 미루어봐도 그의 음악적 특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 드론에 의해 조직되는 무거운 중량감 있는 사운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크 앰비언트 계열의 주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레이블 데뷔 이후 1-2년 간격으로 꾸준히 작업을 선보이는 음반사의 대표적인 뮤지션 중 한 명이기도 하며, 이번 앨범은 호평을 받은 Against Civilization (2020) 이후 2년 만에 발매한 신작이다.
로버트는 레이블이 지향하는 음악의 성격은 물론, 일련의 이야기 서사를 완성하고 이를 음악적인 표현으로 전개하는 특징 또한 잘 반영하고 있다. 매번 각기 다른 소재를 채택하고 있지만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가득한 내용을 주로 선보이고 있으며, 각각의 작업에 알맞은 상징적인 사운드를 활용해 음악적 내러티브의 개별적 특징을 강조하기도 한다. 복합적인 질량을 지닌 다양한 텍스쳐의 사운드를 조합한 드론을 선보이고 있지만, 주변 효과나 소스의 활용 등에 있어서는 무척 간결한 구성을 이용하고 있으며, 극적인 전개보다는 지속적인 플로우의 과정에서 포착하게 되는 세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집약적인 모습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 역시 로버트의 이와 같은 특징들이 잘 반영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폴리포닉 한 사운드와 복합적인 텍스쳐의 드론이 거대한 웨이브의 플로우 속에서 미세한 전위는 물론, 주변 효과나 음향에 의해 구체화되는 세밀한 과정을 밀도감 있는 공간 속에서 표현한 것은 그의 이전 작업에서 보여준 특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만 이번 작업의 경우 퍼커션 사운드를 이용한 연출이 눈에 띄는데, 이는 마치 전작에서 전자 기타를 이용해 해당 앨범의 고유한 특징을 부각하려 했던 것처럼, 이번 음반의 상징적인 음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활용이 비트 시퀀싱과 같은 방식이 아닌, 퍼커시브 한 사운드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린, 마치 고대 원시 종교 의식이나 중세 신화 속 전투 장면에서와 같은, 무의식의 공포와 긴장을 자극하는 듯한 모습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 느낌이 운명의 우울감과 더불어 정서적 중량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으로, 이는 음악적 몰입을 자극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여기에 기타 루프나 스트링과 같은 전통적인 연주 악기의 특징에 수렴하는 사운드를 활용해, 음악을 통해 묘사하는 공간의 가상성과 현실의 거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연출은 물론, 다양한 소스의 복합적인 텍스쳐를 융합해 미묘한 정서적 다면성을 유도하는 접근에서 로버트 특유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잘 짜인 디테일이 더해지며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앨범이다.
202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