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Arbre - Lunaires (Unit, 2022)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트리오 Arbre의 앨범. 아버는 플루겔호른/일렉트로닉 Paul Butscher, 피아노/키보드/신서사이저/일렉트로닉 Mélusine Chappuis, 드럼 Xavier Almeida 등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며, 비교적 최근에 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세 명의 뮤지션이 지금까지 리드하고 참여했던 그룹들을 보면 재즈, 민속 음악, 록, 힙합, 일렉트로닉 등에 이르는 폭넓은 장르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이들은 각기 다른 음악적 배경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번 아버의 앨범에서는 이와 같은 각 멤버들의 다양한 음악적 경험은 일체감을 지닌 형식미를 통해 잘 반영되어 있는데, 주로 일렉트로닉과 재즈, 그리고 부분적으로 록의 특징들을 부각하며 트리오만의 고유한 사운드와 음악을 완성하고 있다. 이들 연주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활용에 있다. 특히 다양한 텍스쳐의 사운드를 폭넓게 활용하고 이를 하나의 구성 속에 엮어내면서, 공간 전체에 이를 채우며 배열하기보다는 충분한 여백과 거리를 두며 각각의 악기가 지닌 고유한 음색이 충분히 살리는 비교적 여유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 대신 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스테레오 이미지상에서의 위상보다는 총체적인 균형을 염두에 둔 듯한 사운드의 중첩을 통해 각각의 곡이 지닌 음악적인 형상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연주와 진행 곳곳에 재즈적인 표현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그 범주를 벗어난 듯한 인상을 주는 요인이기도 한데, 재즈의 관점에서만 보면 이러한 공간 활용이 멤버들에게는 기존과는 다른 양식의 상호 의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의 연주에는 인터플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진행에서 보여주는 인터랙티브는 마치 구조화된 견고체처럼 단단하고 긴밀하다. 이는 공간적 여유 속에서 각자가 점유하는 기능적 위상에 충실한 모습처럼 비치며, 결과적으로는 아버만의 고유한 음악적 분위기를 완성하게 된다. 이는 마치 거대한 아키텍처에 몇 개의 상징적인 구조물만으로 디테일을 완성하여, 황량하면서도 압도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미를 떠올리게 한다. 구조화된 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이들의 연주는 섬세하고,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등 모든 사운드와 요소는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절제되어 있고, 그 배열 또한 가장 적절한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정서와 감정을, 한순간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포착하며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피아노의 서스테인 끝 여음에 실린 디스토션에도, 플루겔호른의블로우 주변을 감싸는 이미지너리 한 리버브는 물론, 드럼의 강박적 패턴에 담긴 단단한 밀도 등, 짧은 순간 이루어진 소소한 표현에서조차 깊이 있는 감정이 전달되고 있다. 차가운 건축물처럼 견고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포근한 온기 가득하여 더없이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