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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rcane Earth Reboot - Cirrocumulus (Yuggoth, 2023)

 

Arcane Earth Reboo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독일 전자음악가 Josua Karlson의 앨범.

 

작년부터 활발하게 일련의 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한 조슈아는 원예학자로 일하면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식은 물론, 꿈속 풍경이나 내면의 세계로부터 받은 영향을 음악으로 전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선보인 각각의 앨범은 서로 미묘한 편차와 특징을 담아내고 있지만, 전자 음향을 바탕으로 하는 앰비언트라는 공통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주로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강했다면, 이번 앨범은 자연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음악적으로 담아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와 같은 특징은 음악적 구성은 물론 소리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데, 사운드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탐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를 서로 대면시켜 어떤 음악적 조화와 효과를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담아내고 있다.

 

긴 어택과 서스테인이 만들어 내는 공기의 흐름과도 사운드스케이프는 서로 중첩을 이루며 공간의 밀도를 채우기도 하고, 딜레이와 리버브가 빈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며 조금씩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기도 한다. 화성의 구조를 이용한 공간의 구성을 통해 안정적인 하모닉스가 연출하는 분위기의 연속성을 담아내며, 마치 일상적 움직임을 표현한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연관성을 보여주는 곡 제목을 생각해 보면, 때로는 깊이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때로는 낮은 음역대의 사운드에 더해진 풍부한 배음과 텍스쳐를 활용해 무거운 움직임을 포착하기도 하는데, 노이즈 플로우를 이용해 연출하는 다양한 사운드는 필드 리코딩을 연상하게 하는 묘사적 특징을 더하며 곡의 진행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간결한 렌덤 시퀀싱이 중심을 이루는 곡에서도 점층적인 레이어링을 보여주며 섬세한 플로우를 완성하기도 하는데, 각 라인의 고유한 음역대에서 이루어지는 각기 다른 특징의 변화들을 조율해 가며 공간의 부피감을 키워가는 구성을 완성하기도 한다. 중심을 이루는 라인은 물론 주변적인 사운드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캐릭터에 큰 변화를 유도하지는 않지만, 프리퀀시나 레조넌스 등의 필터 조절을 통해 섬세한 움직임을 담아내는데, 그 과정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워, 마치 일상적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스텝 시퀀싱이 기본적인 플로우를 이끄는 사운드스케이프에 더해지기도 하지만, 통상적인 반전의 효과로 작용하는 대신, 공간의 변화를 구체화하면서도 고유의 음악적 분위기를 지속하는 섬세한 일관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앨범 전체는 각각의 곡마다 조금은 다른 구성을 보여주면서도, 나름 작업 전체의 고유함을 간직하고 있어, 이번 작품에서 AER이 지향하는 앰비언트의 분위기와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음향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통해 하나의 사운드가 곡의 흐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에 대한 나름의 깊이 있는 고민을 담아내고 있으며, 이를 통합해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하는 과정에 대한 세밀함도 느끼게 하는 앨범이다.

 

 

202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