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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Arooj Aftab, Vijay Iyer, Shahzad Ismaily - Love In Exile (Verve, 2023)

 

보컬 Arooj Aftab, 피아노/키보드 Vijay Iyer, 베이스/신서사이저 Shahzad Ismaily의 트리오 앨범.

 

아루즈와 샤흐자드는 파키스탄계, 비제이는 인도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세 명 모두 이민 가정 출신의 미국으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인이라는 점 외에 특별한 음악적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매우 개략적이고 넓은 의미에서 재즈라는 접점을 찾을 수 있고, 마침 이번 앨범의 발매가 Verve에서 이루어진 점을 미루어, 이들 세 명의 음악적 합이 해당 장르를 기반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 모든 예상은 이번 작업 앞에서 보기 좋게 빗나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 세 명은 2018년에 처음 만나 라이브 공연을 통해 사운드와 음악적인 합의를 발전시켜 왔고, 간헐적으로 이어진 여섯 차례의 느슨한 음악적 실험의 첫 결과물이 이번 작품인 셈이다. 녹음 또한 라이브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했고 편집 또한 최소화한 것으로 전해지며, 실제로 그 방식 또한 각자의 연주를 들려주며 그 반응을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비제이는 이를 임프로바이징이라는 표현 대신 “실시간으로 이루어진 공동 작곡”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아루즈 또한 “실제로 미리 무엇을 적거나 구조를 계획하지는 않았”고 경청과 연주를 오가는 “물고기 떼처럼 번갈아 가며 서로를 휘젓고 다녔다”라고 녹음을 회상한다.

 

아루즈가 말한 ‘물고기 떼’라는 표현이 어쩌면 이번 작업의 성격을 집약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연주에서는 통상적인 재즈 편성에서의 규범적 양식은 무의미하다. 비제이나 샤흐자드가 제안하는 하나의 단편적인 음이나 추상적 모티브에 의해 시작하는 연주는, 그 자체로 일련의 반복과 진화를 거치면서 개별적인 플로우를 이어가고, 흐름을 통해 서로를 견인하는가 하면 새로운 개입을 통해 새로운 양식의 진행을 연출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비제이와 샤흐자드 사이의 인러택리브 한 반응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느슨하지만 유기성을 지닌 하나의 공간적 양식을 완성하고, 이를 조심스럽게 전개하며 서서히 밀도를 채워가는 동안, 아루즈는 그 사이에 개입하여 서서히 구조화되는 양식을 전위 혹은 전복하면서 새로운 구성적 합의를 위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가사가 있는 보컬이지만 아루즈의 목소리는 마치 악기가 재현하는 독특한 사운드처럼 들리는데, 뜻을 해석하기 힘든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점 외에도 단어를 발음하는 딕션 하나하나가 마치 고유한 울림을 지닌 음향과 효과처럼 들린다는 이유도 있을 듯싶다.

 

비제이라는 강력한 아이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들 트리오의 음악은 재즈를 넘어서고 있으며, 아루즈라는 상징적인 뮤지션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민속 음악 혹은 글로벌 뮤직 등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 두 가지 양식을 포괄하며 보다 확장적인 장르적 규범 속에서 이들의 음악이 다뤄질 수 있는 여지를 개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트리오의 독특한 음악적 위상은 샤흐자드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느낌을 주는데,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음악의 흐름 속에서도 베이스를 이용해 안정적인 호흡을 이어가고, 신서사이저의 다양한 사운드를 통해 장르적 경계를 미묘하게 흔드는가 하면, 때로는 다면적인 성격을 부각하며 트리오만의 고유한 농도와 채도를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제이와의 인과적 합의 속에서 구성의 독특한 특성을 완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루즈가 개입한 공간에서는 포화한 밀도감을 만들어 트리오 특유의 텐션을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퍼커시브 한 요소를 배제한 트리오의 흐름에 독특한 텍스쳐와 섬세한 사운드스케이프와 효과를 더하며 장르적 경계를 흔들며 다면성을 부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샤흐자드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아루즈, 비제이, 샤흐자드 모두 각자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학습된 경험에 따라 자신의 연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트리오의 공간 속에서 완성한 음악적 합은 자신들의 관습을 넘어선, 전혀 새로운 집단적 표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단순히 상호 신뢰와 경청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그 과정은 치밀하고, 본능적 직관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창의적이다. 이들의 연주를 그 어떤 장르적 접근을 통해 들어도 독창성과 창의성을 고루 갖춘 뛰어난 완성도를 지녔다는 사실을 쉽게 부정하기 힘든 앨범이다.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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