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Asger Baden의 앨범. 애스게르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데뷔해 전문 연주자로 성장하였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활동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 TV와 영화 음악은 물론 대중음악 분야에도 여러 그룹 활동을 통해 참여하기도 한다. 특히 영화배우이자 뮤지션인 Peder Thomas Pedersen과 Asger Baden & Peder라는 이름으로 공동 제작 및 작곡에 이르는 폭넓은 창작을 펼치기도 한다. 애스게르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위한 다수의 음악 작업에 참여하는데 그중에는 전설적인 시리즈 Breaking Bad (2008-2013)를 비롯해 The Wolfpack (2015)과 같은 장편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풍부한 그의 필모그라피에 비해 디스코그라피는 무척 희귀하다. 특히 그의 개인 작업은 지금까지 Zarniqa (2015)가 거의 유일했는데, 기존의 영화 음악의 텍스쳐를 활용해 작업하여 애스게르의 음악적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작업은 전작에서 보여준 영화적 질감을 재현하고 있어, 어쩌면 애스게르 다운 특징을 살리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전작이 미스터리 역사물과 같은 느낌을 줬다면 이번 앨범은 환상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스릴러 판타지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조금은 조금은 미묘하게 다른 장르적 인상을 전한다. 테마를 이루는 메인 악기를 전면에 배치하고 그 뒤로 오케스트레이션이나 신서사이저를 활용한 배음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재즈, 클래식, 일렉트로닉 등의 다양한 언어를 복합적으로 조합해 각 트랙에 맞는 음악적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전통적인 균형과 조화에 수렴하는 듯하면서도 의외의 효과와 요소를 적절히 배치해 극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청자에게 음악적 상상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러 계기를 개방하고 있어 특히 매력적이다. 트럼펫, 클라리넷, 피아노, 현악기 등 전통적인 연주 악기를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이 차용하는 음악적 아이디어는 다분히 에소테릭 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의도에서 튜닝된 사운드로 전달되고 있어 익숙함과 낯섦의 미묘한 경계에서 동작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어쩌면 전체적인 곡의 진행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전개와 더불어 이와 같은 사운드 큐레이팅을 통해 앨범은 더욱더 영화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 인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앨범 제목부터가 이러한 의도를 풍기고 있으며, 더불어 덴마크의 유명 일러스트 작가이자 영화감독 John Kenn Mortensen의 커버 아트 역시 그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20211128